지난 달 28일 3박5일간 미국 출장에 오른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 미국 판매법인(HMA)이 있는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디자인센터, 앨라배마와 조지아 공장 등 빡빡한 일정을 보냈다. 하지만 어떤 현안보다 에쿠스 판매 준비 상황을 꼼꼼히 챙겼다. 수출에 필요한 미국 교통기관의 인증 획득 상황, 판매망 확보, 가격과 광고 전략까지 점검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에쿠스 (미국) 수출에 꼬박 1년 넘게 공을 들이고 있다”며 “값 싼 중소형 차밖에 만들지 못한다는 설움을 단 하나의 차종으로 털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대ㆍ기아차가 에쿠스로 글로벌 시장에 승부수를 던진다. 빠르면 10월께 북미 대형 럭셔리카 시장에 에쿠스를 내놓고 렉서스 등과 정면 대결할 계획이다. 성공할 경우, 현대ㆍ기아차는 그동안 값싼 중소형 위주로 양적으로 성장한 업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브랜드 가치가 한 차원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에쿠스는 미국 교통환경보호국(EPA),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 등에서 인증 절차를 밟고 있다. 당초 8월께 미국 판매에 들어 갈 계획이었으나 ‘안착’을 위해 돌다리도 두들겨 가는 모양새다. 인증 작업이 순조로워 마지막 앰블램 조정 작업을 마치면 따르면 10월께 본격 판매에 들어간다.
에쿠스에는 현대ㆍ기아차의 첨단 기술이 총동원됐다. 엔진은 4,600㏄ 8기통 타우엔진이 장착된다. 최고 385마력의 출력을 자랑하는 이 엔진은 미국 전문 기관으로부터 세계 10대 엔진으로 선정된 바 있다. 또 아이패드와 같은 타블릿PC도 탑재한다. 이와 관련 현대차 미국법인(HMA)의 존 크라프칙 사장은 “전자 매뉴얼과 상호 정보 전송을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표 차종 있어야 대접 받는다
자동차 업체들은 그 회사를 대표하는 최고급 차종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 마치 전투 함단의 대장함(플래그십)처럼 전체 차종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도요타의 렉서스 LS460, BMW의 7시리즈, 벤츠의 S클래스 등이 플래그십의 예다. 이들 차종은 해당 업체의 최고 기술이 집약돼 있다. 좋은 평가를 얻을 경우, 해당 업체의 다른 차종까지 고급스럽게 인식되어 전체적으로 수익 개선 효과를 낳는다. 도요타의 렉서스가 대표적인 성공 사례. 도요타는 1980년대 유가 폭등시 중소형차로 미국 시장을 점령했지만, 역시 일본인들은 작은 차나 만든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이를 일소한 것이 렉서스다. 도요타는 1989년 최고급 렉서스 LS시리즈를 미국 시장에 선보인 뒤 21년간 52만대 이상 팔았다.
▦렉서스 혹은 페이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대량 생산 업체 중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독일 폴크스바겐의 페이톤이다. 2003년 폴크스바겐은 아우디8과 플렛폼을 공유한 대표 차종 페이톤을 미국 시장에 내놨다. 브랜드 인지도를 대표 차종으로 끌어 올리겠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2004년 1,900여대를 팔았을 뿐 해마다 판매가 급감, 2007년에는 단 17대 밖에 팔지 못하고 철수하고 말했다. 작은 차를 만드는 업체라는 시장의 통념을 깨뜨리지 못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3년간 절치부심하던 폴크스바겐은 올해 뉴 페이톤으로 다시 문을 두드릴 계획이다. 금융위기 이후 사실상 세계1위 업체지만 대표 차종의 성공 없이는‘진정한 1위가 아니다’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장함 에쿠스
쏘나타의 안착에도 불구하고 현대ㆍ기아차가 에쿠스 수출에 진력을 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동안 대장함 없이 전투를 벌여 왔던 상황을 에쿠스로 돌파하겠다는 것. 타우엔진과 자동8단 변속기를 탑재한 에쿠스의 성능은 표면적으로 대표 차종으로 손색이 없다. 가격은 5만~6만달러. 경쟁차종인 렉서스LS460이 6만5,000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무난하다는 평가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미국 자동차 수요가 서서히 회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다 경쟁차종인 렉서스가 리콜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현대차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획기적 마케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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