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철군을 앞두고 홀로서기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이라크가 3차례의 비교적 공정한 선거를 치르고도 여전히 빈곤과 정치적 불안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풍부한 석유자원에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 “이라크가 ‘석유의 저주’의 희생자로 전락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세계 3위 산유국인 이라크가 대부분 산유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경제적 질곡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들이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외화를 벌어들이는 산유국의 처지를 두고 우리나라 같은 자원빈국 국민들은 부러운 눈길을 보내지만, 사실 산유국 경제를 살펴보면 풍족한 지하자원이 축복이라기 보다 저주로 작용한다. 석유개발권을 쥔 권력자는 부패의 유혹을 거절하기 힘들다. 또 석유수출로 인한 막대한 무역흑자는 자국화폐 가치를 절상시켜 다른 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힘들게 만든다. 결국 소수 대형 석유회사를 제외한 대다수 국민들은 실업과 빈곤의 나락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이 몰락한 이후 정치가 비교적 안정된 상황에서도 이라크 경제 역시 이 같은 석유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 정부는 석유개발 위주의 상명하달식 경제를 운용하고 있으며, 일자리 창출과 민간산업의 발전유도는 립서비스에 그칠 뿐이다. 석유산업은 이라크 정부 세금수입의 95%, 국내총생산(GDP)의 60%를 차지한다. 하지만 일자리는 1%만을 제공한다. 정부는 이라크 국토의 90%를 소유하고, 주요 제조업체도 거의 정부 소유로 시장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 기회조차 제공되지 않고 있다. 이라크 정부는 자체적으로 한해 15억 달러의 대출업무를 하고 있는데 이는 전체 이라크 은행들의 대출액보다 많다.
이라크 경제는 이미 석유를 쥐고 무위도식하는 권력층과 그렇지 못한 대다수 국민들로 철저히 분리돼 있다. 바그다드의 관공서와 대사관들은 모두 가시철조망과 시멘트 담장으로 둘러싸인 ‘인터내셔널 존(Zone)’이라는 요새 속에 있다. 요새 밖 바그다드 시민들은 하루 3시간만 전기가 공급될 정도로 빈곤하다. 오히려 이라크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자치지역 쿠르드는 민간업자가 발전소 사업에 참여해 하루 18시간씩 전기를 공급한다.
이라크 서민들의 극심한 빈곤은 시아파와 수니파간의 극렬한 종교ㆍ정치 갈등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그치지 않는 테러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의 전 자문역이었던 모와팍 알 루바이에는 “제대로 된 규범을 갖춘 자유시장 경제를 이라크도 가져야 한다”며 “이 상태로 계속 갈 수는 없다”고 한탄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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