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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이봉주를 잇는 한국마라톤 기대주 지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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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이봉주를 잇는 한국마라톤 기대주 지영준

입력
2010.08.09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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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3분59초 vs 2시간7분20초.

마라톤 세계 최고기록과 한국 기록의 차이다.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37ㆍ에티오피아)가 작성한 세계 기록은 100m를 17초63에 주파해야 가능하다. 한국기록은 이보다 0.47초 느린 18초10. 산술적으론 42.195km 풀코스를 뛰는 동안 200여초 차이가 난다. 결국 3분여 격차는 1km이상 처진다는 이야기다. 마라톤 전문가들은 “후발주자가 선두를 따라잡을 수 있는 최장거리는 200m”라며 “이는 상대를 시야에서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럴진대 1km이상 뒤처진 것은 추격할 의지조차 생기지 않는 불가항력의 격차가 아닐까. 한국마라톤의 위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마라톤을 세계수준과 비교하면 아예 ‘게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마라톤 풀코스를 2시간여 달리다 보면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당일의 컨디션은 물론이고, 코스환경, 기온, 바람 등등. 그만큼 마라톤은 변수가 많이 작용하는 경기다. 선수로서 환갑의 나이에 세계기록을 낼 수 있는 유일한 종목도 마라톤이다. 게브르셀라시에는 35세에, 이봉주는 31세에 최고기록을 터뜨렸다.

한국마라톤의 현재, 지영준

5일 오후 3시30분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지영준(29ㆍ코오롱)을 비롯한 15명의 남자 마라톤 국가대표팀이 오후 훈련을 위해 막 숙소를 나서고 있었다. 횡계리는 해발고도 800m에 위치해 평지보다 5도 정도 낮은 기온으로 하계 마라톤 전지훈련지로 안성맞춤인 곳이다. 하지만 한 여름 뙤약볕은 뜨거운 기운을 토해내며 선수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훈련장까지 뛰어가는 10여분 동안 태극마크가 선명한 유니폼은 금새 땀으로 흠뻑 젖었다. 황영조(40) 감독은 “그래도 여름철에 훈련할 수 있는 곳은 횡계리가 최적의 장소”라며 “내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에 대비해서라도 무더위에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발끈을 바짝 죈 지영준을 선두로 대표팀이 본격적인 레이스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들에겐 평지는 성에 차지 않았다. 산 길로 접어든 선수들은 이내 바람처럼 사라졌다. 2시간이 지났을까. 지영준이 ‘몸 좀 풀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피곤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영준은 “그냥 일상인데요. 뭐”라며 웃어넘겼다. 이봉주가 은퇴한 이후 한국마라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지영준은 그렇게 한 여름과 싸우고 있었다.

오전 5시50분에 일어나 2시간여를 달린 뒤, 다시 오후 3시30분부터 2시간여를 더 뛰어야 하루 훈련량을 마친다는 지영준은 벌써 한 달째 매일 40여km를 넘나드는 강행군을 소화하고 있었다. 일본 홋카이도에서 한 달간 전지훈련에 이어 2일 횡계를 시작으로 5주간 국내훈련에 들어간 지영준은 지난달 말 아버지가 됐다. “아들(윤호)이 태어나 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는 그는 11월 광저우(廣州) 아시안게임 메달을 아들의 목에 걸어주겠다고 말했다.

무더위를 즐겨라, 메달이 보인다

지영준의 최고기록은 2시간8분30초. 2009 대구국제마라톤에서 1위로 골인하며 작성했다. 올해 기록은 같은 대회에서 2시간9분31초를 찍었다. 아시아 시즌 최고기록 2시간9분21초에 10초 뒤진 3위권에 해당해, 메달 가능성은 높다. 특히 맞바람이 초속 5~6m로 부는 악조건 을 딛고 작성한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호 기록으로 평가된다. 지영준은 광저우의 무더위로 인해 2시간12분대에서 메달색깔이 갈릴 것으로 예측했다.

충남부여가 고향인 지영준은 중학교 3학년 때 달리기와 인연을 맺었다. 그의 소질을 눈여겨본 체육선생님의 추천을 통해서다. 3,000m부터 시작한 지영준은 충남체고로 진학하면서 5,000m로 보폭을 넓혔다. 이후 마라톤 명문 코오롱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으로 마라톤에 뛰어들었다. 2003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8분43초로, 1위에 1초 뒤진 2위로 골인하면서 육상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린 지영준은 이후 소속팀과의 갈등으로 오랜 시간 방황을 거듭했다. 자칫 선수생명 위기로까지 번질 뻔한 갈등은 지영준이 군복무 도중 원주 상지여고 정만화(50) 감독과 아내 이미해(28)코치를 만나면서 마침표를 찍었다. 지영준은 “정 감독님을 만나면서 마라톤 인생의 새 전기를 맞았다”며 “아내의 적극적인 후원과 안정적인 환경에서 훈련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황영조와 이봉주의 뒤를 이어 한국마라톤의 적통을 잇고 있는 지영준은 당장 “한국기록을 뛰어넘어 내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 입상이 목표”라고 말했다. 2시간4~6분대 철각들만 100여명이 훌쩍 넘는 상황에서 ‘희망사항’으로 들린다. “제 나이 이제 겨우 스물아홉입니다. 하지만 게브르셀라시에는 서른다섯에 세계기록을 냈습니다. 제 다리를 만져 보십시오. 아직 싱싱합니다.”지영준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횡계=글ㆍ사진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 지영준은 누구?

나이 29세(1981년생)

키 173cm, 몸무게 60kg

2남중 장남. 동생은 직업군인(부사관)

고향은 충남부여

최고기록 2시간 8분30초

최근에 읽은 책

취미는 음악감상, 독서

좋아하는 음식은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마라톤 출발전 찰밥 반 그릇에 멸치와 김을 반찬으로 바나나 반 개 섭취

레이스도중 30km지점 지나면 너무 힘들어 아무 생각도 안난다

■ 황영조 감독의 실험, 대표팀 첫 합숙훈련

한국마라톤이 ‘족패천하’(足覇天下)의 전통을 잇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손기정에 이어 황영조의 올림픽 금메달과 1950년 세계 최고전통의 보스턴 마라톤 1~3위를 싹쓸이한 종목이 한국마라톤이다.

황영조 마라톤 기술위원장겸 국가대표 감독이 이끄는 남녀 대표팀이 일본 홋카이도에 이어 강원 횡계리에서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내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에 대비, 2개월째 하루 40km가 넘는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남자15명, 여자6명 등 총21명의 선수들이 소속팀을 떠나 대표팀에서 합숙훈련을 하는 것은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황 감독은 “소속팀의 거센 저항이 있었지만 끝까지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황 감독의 ‘실험’은 반 년도 안돼 성과를 나타냈다. 올 상반기까지만 2시간20분대를 기록한 선수가 27명으로 늘어난 것. 황 감독은 “예년보다 7명이 증가했다. 연말까지 35명선으로 늘어날 것이다”라며 “그만큼 허리 층이 두터워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비록 세계 수준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지만 이들 가운데서 메달이 나오는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를 위해 황 감독은 선수들에게 “겁내지 말고 배짱으로 승부하라”고 주문했다.

“합숙훈련으로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황 감독은 “선수들 사이에서 자기관리를 못하면 대표팀에 뽑히지 못한다”라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게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과거 기록을 바탕으로 국가대표에 발탁됐지만 이제는 기록은 참고용 일뿐 경쟁을 통해 몸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뽑겠다는 것이다.

내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을 책임져야 할 황 감독은 “마라톤은 트랙과 달리 변수가 많다.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 남녀 단체전 3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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