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약세장의 핸디캡을 뚫고 무섭게 치고 올라오던 주가가 1,800선 벽 앞에서 멈춰 섰다. 코스피지수는 1,780~1,790 사이에서 지난 일주일 내내 지루한 답보상태를 이어갔는데, 이번 상승장도 예외 없이 ‘펀드환매’가 딴죽을 걸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가 1,700선에 근접했던 지난달 8일 이후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국내 주식형 펀드는 21일 연속 순유출을 기록했다. 이 기간에만 펀드에서 이탈한 돈은 3조5,000억원이 넘는다.
이에 따라 올 들어 주식형 펀드에서 빠져나간 돈은 10조원을 넘어섰다(5일 현재 10조930억원). 이는 지난해 연간 유출 규모(7조7,000억원)보다도 훨씬 많은 액수다.
이처럼 펀드자금의 순유출이 계속되는 것은 펀드가입자들의 환매 때문. 코스피지수가 1,700선을 넘었던 2007년 6월 이후 펀드에 가입했다가 금융위기 와중에 큰 손실을 봤던 투자자들이 주가가 상승해 원금을 회복하자 펀드에서 털고 나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대투증권 김대열 펀드리서치팀장은 “2007년 하반기 이후 펀드 신규 가입자들은 대부분 은행 쪽에서 들어 온 보수적인 성향의 투자자들”이라며 “리먼 사태를 겪으며 펀드에 대한 불신이 커진 이들이 안전 자산으로 갈아타려고 펀드를 환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주가도 계속 발목이 잡힌 형국이다. 이런저런 호재로 주가가 강한 상승을 시도할 때마다, 펀드환매물량이 쏟아져나오면서 추가상승을 저지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펀드환매가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주가가 1,800선에 진입할 경우, 환매압력은 더 커질 것이란 분석이다. 현대증권에 따르면 2002년 6월말~2008년 3월 말 코스피지수 1,800~1,900선에서 들어온 자금은 12조1,151억원. 다시 말해 1,800선에서 환매타이밍만 보고 있는 대기자금이 12조원에 달한다는 얘기다. 신한금융투자 이계웅 펀드리서치팀장은 “지난달에 2조6,000억원 가량이 빠져나갔는데 앞으로 3~4달 정도는 비슷한 규모의 자금이 이탈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다고 주가상승이 번번히 환매의 벽 앞에서 저지당할 것이란 얘기는 아니다. 하나대투증권 김대열 팀장은 “증시가 강하게 상승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다면 이탈하는 자금보다 신규유입자금의 힘이 더 커질 것”이라며 “4분기에는 경기지표가 상승추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여 빠르면 4분기, 늦어도 내년에는 순유입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동양종금증권 김후정 연구원은 “펀드 환매는 지수 보다는 심리에 많이 좌우된다”면서 “지수 상승과 경제 성장이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면 지수와 크게 상관없이 자금이 순유입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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