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호승(60)씨는 시에 앞서 동시로 문단에 첫발을 들였다. 군 복무 중이던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 당선됐던 것. 이듬해 시인으로, 1982년엔 소설가로 등단한 그는 그러나 줄곧 시에 매진해왔다. 그런 그가 동시집 (처음주니어 발행)를 내고 “앞으로 동시를 열심히 쓰겠다”고 선언했다.
정씨는 2002년에도 동시집 를 낸 적이 있다. 하지만 ‘어른이 읽는 동시집’이라는 부제가 말하듯 당시 그에겐 아동 독자가 읽을 책을 냈다는 의식이 별로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는 정씨의 두 번째 동시집이되, 그가 동시인이라는 자의식을 갖고 출간한 첫 작품집이다. 이 책엔 신작과 예전 동시집 수록작 등 66편의 동시가 실렸다. 동시 창작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시인의 각오가 반갑게 여겨지는 작품들이다.
‘엄마가 사 오신 무지개떡을 먹었다/ 떡은 먹고 무지개는 남겨 놓았다/ 북한산에 무지개가 걸리었다’(‘무지개떡’)
‘엄마하고 건어물 시장에 갔다/ 보리새우를 파는 가게가 많았다/ 새우가 사는 바닷속에도/ 보리밭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보리새우’)
친구 엄마가 공공화장실 청소 일을 하신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나’는 변기 밖에 오줌을 흘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노근이 엄마가/ 원래 변기는 더러운 게 아니다/ 사람이 변기를 더럽게 하는 거다/ 사람의 더러운 오줌을 모조리 다 받아 주는/ 변기가 오히려 착하다/ 너는 변기처럼 그런 착한 사람이 되거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노근이 엄마’에서)
올해 환갑을 맞은 정씨는 “인간이 육체적으로 다시 태어날 수는 없지만 문학의 세계에선 동시를 쓰면서 어린이로 되돌아가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며 동시 쓰기의 즐거움을 전했다. 그는 “나를 비롯한 시인들이 그동안 아이들을 위한 시를 쓰는 책무를 게을리해온 것이 사실”이라며 “계몽성보다는 문학성을 갖추고 아이들의 영혼에 가닿을 ‘맛있는’ 동시들이 많이 창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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