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새삼스런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대-중소기업 상생 담론이 포퓰리즘에 기초한 일회용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진정한 상생 질서 수립으로 연결되려면, 이번 기회에 대-중소기업간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제도개혁을 해야 한다.
한겨레21의 조사 분석에 의하면, 2010년 1분기에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순이익률은 각각 12.78%와 11.39%였는 데 반해, 이 회사들에 납품하는 부품업체들의 순이익률은 각각 3.0%와 0.16%에 불과했다. 이 자료는 원청업체와 하도급업체 간에 상생이 아니라 엄청난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말해준다.
납품단가 인하부터 방지를
원청업체와 하도급업체 간의 이러한 현격한 순이익률 격차를 기술력 격차로만 설명할 수 없다.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납품가격은 오르지 않고, 하도급업체가 확보한 이윤을 원청업체가 납품단가 인하로 후려쳐 가기 때문에, 그렇게 큰 이익률 격차가 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파트너로서 상생하고 있는 독일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납품단가 인하를 통해 하도급업체의 이윤이 상당 부분 원청업체로 이전되기 때문에 대-중소기업간 상생이 안 되고 있다.
납품단가 인하로 인한 낮은 이익률은 중소기업의 연구개발 투자와 인적자원개발 투자의 여력을 없애어 '저생산성-저이윤, 저임금-저투자-저생산성'이라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따라서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 행위를 막는 것이 대-중소기업 상생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납품단가 인하는 시장에서의 중소기업의 약한 협상력에서 비롯된다. 중소기업의 약한 협상력은 재벌이 지배하는 경제구조 아래서의 경제력 집중, 중소기업의 낮은 기술력, 중소기업들간의 과당경쟁 때문이다.
따라서 대-중소기업간 상생을 위해서는 경제력 집중을 완화시키도록 재벌규제를 강화하고, 중소기업의 기술력을 높이는 종합정책을 실시해야 하며, 시장에서 중소기업의 협상력을 높이도록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개별거래를 넘어 집단거래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와 보조를 맞추어 현행 기업별 노조를 산업별 노조로 개편해야 한다.
우선 당장은 대기업의 대표적 불공정행위인 납품단가 인하를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4월부터 시행 중인 납품단가 조정협의제는 협상력이 약한 개별 하도급업체가 대기업을 상대로 협의하는 것이므로 실효성이 없다. 따라서 업종별 중소기업 협동조합에 납품단가 조정협의권을 위임하여 대기업과 납품단가를 단체협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답합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카르텔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독일의 경쟁법이 중소기업에 한해서는 대기업과의 교섭력이 약하기 때문에 카르텔 형성을 허용하고 있는 사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중기 종합지원정책 마련도
이와 관련하여 중소기업협동조합의 협동화 사업에 한해서 공동판매라는 담합을 인정하자는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의 제안은 적극적으로 검토할 만하다. 시장에서의 중소기업의 협상력을 높이는 이러한 제도개혁이 있어야 대-중소기업 상생 담론이 '하청으로부터 파트너십으로'라는 대-중소기업간 관계의 근본적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일본의 중소기업 정책처럼, 산업 고용 교육 복지 금융 재정 정책들이 상호 보완성을 가지는 하나의 패키지로 결합된 중소기업 종합지원정책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다 지역 중소기업의 혁신능력을 높이기 위한 지역대학의 산학협력이 획기적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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