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애리조나주에서 촉발된 이민단속법 논란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가장 아픈 '정치의 실패'로 기록될 것 같다. 법안 자체가 정당한가 여부는 그만두더라도 많은 국민이 행정부의 이민정책이 실패했다는 데 공감하며 오바마 대통령이 극구 반대하는 이 법을 찬성하는 데서 알 수 있다. 애리조나의 이민법은 이미 미 전역 30개 가까운 주가 비슷한 법안을 추진하는 등 파장이 확대일로이다.
지방정부의 연방정부법 무시
얼마 전에는 버지니아주의 검찰총장이 경찰이 불법체류자의 이민 신분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낸 데 이어 밥 맥도넬 주지사도 "지역경찰에 이민국 단속반의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이민논란에 가세했다. 이민 단속이 지방정부가 아닌 연방정부의 고유 권한이라는 데는 거의 이견이 없다. 오바마 대통령이 애리조나의 이민법을 중지시키기 위해 연방법원 제소라는 강경한 수단을 들고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싸움의 흐름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법무부의 제소 이후 애리조나 이민법을 준용하겠다고 나선 지방정부가 오히려 늘고 있고, 민심도 '법은 그렇게 돼 있을지 모르나 불법체류자 문제를 이대로 놔둘 수는 없다'는 쪽이다. 공화당은 성난 민심을 중간선거에 이용하기 위해 정치적 공세에 나서 상황을 더욱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
이민 문제 역시 따지고 보면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남긴 어두운 유산이다. 이민법 개혁요구가 거셌던 2006년 봄, 민주당과 공화당의 중도파 의원들은 부시 대통령의 지원 아래 포괄적 이민법안을 추진했다. '한시적 근로 프로그램'등을 도입해 현재의 불법체류자들을 양성화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곧 공화당에서 '법 위반자에 대한 집단 사면'이라는 반발이 나오고, 민주당에서도 '한시적'의 기간을 놓고 잡음을 일으키면서 포괄적 이민법안은 1년여를 표류한 끝에 2007년 6월 결국 폐기됐다. 오바마 대통령이 '워싱턴 개혁'을 공약으로 내건 이면에는 이민개혁을 둘러싼 정치권의 소모적 정쟁에 자극 받은 탓이 컸다. 대선 후보 시절 "당선된다면 임기 첫 해에 포괄적 이민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의욕적으로 이민 문제를 들고 나온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그도 역대 행정부에서 '판도라의 상자'로 불렸던 이민개혁 문제에서는 한없이 무기력했다. 뚜렷한 이유 없이 법안 추진을 미뤘고, 이런 소극적 태도는 애리조나주가 불법체류자들을 강력히 단속하는 내용의 자체 이민법으로 행정부의 허를 찌를 때까지 계속됐다. 지금도 오바마 행정부는 애리조나 이민법을 반대만 할 뿐 이렇다 할 개혁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불법체류자 대책 왜 안 세우나?"
애리조나를 비롯한 여러 주정부가 연방법 위반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불법체류자 단속에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이들의 80% 이상인 히스패닉계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와 국경을 맞댄 애리조나 등 남부 주에서는 마약 밀수 등 히스패닉이 연루된 범죄가 크게 늘었다. 경제위기가 3년째 접어든 상황에서 불법체류자들이 건설 일용직 등 일자리를 잠식하는 것도 주민들의 불만을 폭발시켰다. 애리조나만 해도 1990년대 9만명 수준이던 것이 지금은 5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발등의 불'이 된 문제에 뒷짐지다 뒤늦게 '관할권'을 주장하는 정부를 국민은 어떻게 볼까. 애리조나의 이민법을 국민은 주정부의 '자위권' 행사로 보고 있다. 정부가 할 일을 제대로 안 할 때 국민에게 어떤 대접을 받는지를 이민법 파문은 잘 보여주고 있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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