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숭동 마로니에공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난 4월 구로동으로 이전하면서 지금은 비어있는 옛 청사 건물 위에 하얀색 말풍선이 둥실 떠있다. 그 안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호기심이 생긴다.
빈 공간을 메우고 있는 것은 작가 14명이 참여한 전시 ‘자치구역 1-130’이다. 1931년 건축가 박길룡이 설계한 뒤 경성제대와 서울대 본관, 문예진흥원과 문화예술위 사무공간으로 사용됐던 유서깊은 이 건물 곳곳에 미술품들이 스며들었다.
김재남씨는 건물 외부뿐 아니라 내부의 사무실들을 돌아다니며 빈 말풍선을 띄우고 사진을 찍어 과거의 풍경을 더듬었다. 김자림씨는 계단 아래에 이끼를 소복하게 심어놓았고, 김형관씨는 파란색 비닐로 방 하나를 뒤집어씌웠다. 강준영씨가 꾸민 방에서는 턴테이블 위에 놓인 도자기가 반짝이는 미러볼을 배경으로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고 있다. 마치 화려한 고별 무대라도 펼치는 듯하다.
14일 이 전시가 끝나면 곧바로 건물 내부공사가 시작된다. 예술가들의 작업공간과 회의장 등으로 이뤄진 ‘예술가의 집’으로 용도를 바꾸기 위해서다. 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틈새를 파고든 이번 전시는 참여 작가 중 한 사람인 채지영씨가 기획하고 제안해 이뤄졌다.
옛 문화예술위 청사 바로 옆에 자리한 아르코미술관에서도 독특한 콘셉트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세계 각지를 다니며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작업을 선보여온 작가공동체 ‘나인드래곤헤즈’에 소속된 14개국 26명의 작가들이 유목민이라는 테마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 ‘노마딕 파티’다.
설치미술가 이승택씨는 잘려나간 나뭇가지와 동료 작가들의 초상화를 결합한 작품 ‘현대화된 허수아비’를 전시장 벽에 줄세웠고, 우슬라 스탈더(스위스)는 유럽과 한국의 길거리에서 주운 온갖 잡동사니들을 바닥에 배열했다. 일회용 나무젓가락으로 매트와 칸막이를 만든 수 칼라난(호주), 폐자전거와 타이어를 엮어 연꽃을 만든 알리 브람웰(뉴질랜드) 등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가브리엘 애덤스(미국)는 미술관 주위에서 관람객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나눠주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하지만 이 전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작가들은 전시 개막 이튿날인 8일 중국 실크로드로 여행을 떠나 열흘 후 돌아온다. 그리고 사막에서의 경험과 기억을 다시 작품에 덧붙여 전혀 새로운 전시로 변화시킬 예정이다. 9월 5일까지.
김지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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