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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뺑소니로 죽었는데 보험금 다시 돌려달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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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뺑소니로 죽었는데 보험금 다시 돌려달라니… "

입력
2010.08.0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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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때같은 아들을 차로 치어 죽이고, 이제는 보험금까지 뱉어내라는 게 어느 나라 법입니까." 목소리를 높이던 김인섭(43·가명)씨의 손이 떨렸다.

2008년 7월 14일 오후 6시40분께 김씨는 두살배기 아들 명곤(가명)이와 서울 구로구 가로공원에 놀러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앞장서 가던 명곤이는 내리막길에 들어서자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뛰었고, 공원 입구에 맞닿아 있는 횡단보도까지 내달렸다. 차량 진행신호가 켜 있었고 흰색 다이너스티 차량 한 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들과의 거리는 어른 키의 두 배는 됨직했다. 명곤이를 잡기엔 이미 늦었다고 판단한 김씨는 차량을 향해 팔을 내뻗으며 "스톱"을 외쳤다. 하지만 차량은 순식간에 명곤이를 치고 지나갔다.

김씨는 잠시 멈춘 차량을 쫓아갔지만 잡을 수 없었다. 곧바로 피범벅이 된 아들을 병원으로 옮겼지만 머리에 큰 상처를 입어 제대로 손도 쓰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남은 것은 목격자가 종이에 적어준 차량 번호뿐이었다.

사고 차량 운전자 김모(29)씨는 아버지 김씨의 신고로 사고 한 시간 반 만에 집에서 잡혔다. 하지만 그는 "그 시각에 올림픽대로를 달리고 있었다"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한 달 간의 수사가 이어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사고 차량 앞바퀴에서 명곤이의 머리카락을 찾아내면서 사건의 실마리가 풀렸다. 운전자 김씨는 그제서야 "잡지 못할 줄 알았다"며 "교통신호는 분명 주행신호였다"고 자백했다.

김씨의 차량은 무보험이었다. 이에 따라 피해자 김씨 가족은 정부 보장사업을 통해 한 보험사로부터 1억원을 받았을 뿐, 운전자 김씨한테는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김씨 가족은 이후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 "집에 들어가면 아이가 까만 눈동자를 굴리며 '아빠'하고 품에 안길 것만 같아 들어갈 수도 없었다"면서 "살던 집이 팔리지 않았지만 숨이라도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고 했다. 운전자에 대한 처벌은 사법당국이 알아서 해줄 것으로 생각하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김씨 부부는 명곤이를 잃은 충격 탓으로 지금까지 아이를 가질 생각도 못하고 있다. 그렇게 채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김씨에게 부동산 가압류 등기서류가 날아들었다. 김씨에게 보상금을 지급한 보험사가 운전자에게 돈을 갚으라며 구상권을 행사했는데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자, 피해자에게 보험금 반환을 청구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차주인 김씨가 김군이 갑자기 횡단보도로 뛰어들 것까지 예견해 운전해야 할 주의의무는 없다"며 운전자 김씨에 대해 면책 판결했다.

이에 앞서 김씨는 교통사고와 뺑소니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1심은 김씨가 전방 주의의무를 게을리하고, 사고 후 피해자 구호조치를 취하지 않고 달아났다고 판단,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운전자에게 보행자가 적색신호를 무시하고 갑자기 뛰어들 것까지 예견하여 운전해야 할 주의의무까지는 없다"고 밝혔다. 뺑소니 혐의에 대해서도 "과실이 없는 운전자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에서 이 판결이 확정됐다.

명곤이네는 또 다시 초상집 분위기다. 아이를 잃고 이제 1억원의 빚마저 지게 된 것이다. 명곤이 할머니 이복달(76)씨는 "하도 억울해서 이 나이에 노인회관에서 컴퓨터를 배워 인터넷 게시판에 사연을 알리고 있다"며 가슴을 쳤다.

이 사건을 한 달 동안 수사해 운전자의 자백을 받아냈던 구로경찰서 교통사고조사계 노시경 경사는 "사고를 냈으면 당연히 병원까지 호송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걸 안하고 갔으면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당시 사건을 맡은 담당자로서 허탈하다"고 말했다. 한문철 변호사는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었는데 운전자의 과실을 1%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법률구조공단 등을 통해 민사소송이라도 해볼만하다"고 조언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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