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의 혹독한 무더위를 이기게 한 것은 '무섬'이다. 한 송이 연꽃이 물 위에 떠있는 듯한 섬 하나가 내 마음에 들어와 쉬지 않고 강물이 흘러갔기 때문이다. 푸른 강물이 휘돌아 나가고, 태양이 작열할수록 더욱 하얗게 눈부신 백사장, 그 뒤로 기와는 기와대로 초가는 초가대로 편안하게 앉아있는 섬마을.
강에는 섬 밖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였던 폭 20㎝ 정도의 외나무다리가 남아있어 세상에 나가고 들어가는 일의 조심스러움을 가르치고, 어느 고택에 고집스럽게 걸려있는 흥선대원군 친필 현판 해우당(海愚堂), 340도로 평화롭게 에돌아나가는 강물을 빠르고 날카로운 직선으로 바꾸려던 최고 권력자의 오만에 목숨 걸고 마을의 물길을 지켰던 자존이 무섬에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내가 존경하는 한 시인의 시비에 오래 마음 두었으니, 무섬은 그 시인의 처가였다.
시비의 시는 시인의 아내가 써내려간 묵향을 받아 새겨 강가에서 시를 읽는 마음이 뜨거워졌다. '두리기둥 난간에 반만 숨은 색시의/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 자락'에선 첫날밤의 신부가 보이고, '십리라 푸른 강물은 휘돌아 가는데/ 밟고 간 자취는 바람이 밀어 가고/ 방울 소리만 아련히/ 끊질 듯 끊질 듯 고운 뫼아리'에선 그 날의 강이 흐른다. 무섬이 어디에 있는지, 그 시인이 누구인지는 묻지 마시라. 당신이 무섬으로 가고 싶다면 그건 당신의 일이니.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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