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대한민국에서 사법고시에 합격한다는 것은 온 집안과 마을의 경사였다. 동네 어귀에 플래카드가 내걸리고, 없는 살림에 소를 잡아 마을 잔치를 해도 몇 날 며칠 기쁨이 가시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그처럼 빛나는 입신양명의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낸 법조인 자신의 삶은 늘 행복한가.
1990년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법조인은 전문직을 포함한 104개 직업군 가운데 우울증 지수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대학의 연구결과에서도 우울증을 앓는 미국인은 전체 인구의 3~9%인데 비해, 법조인은 그 비율이 19%에 달했다. 일반인에 비해 2배에서 6배 이상 우울증 위험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법조인 우울증 위험 높아
미국에서 일찌감치 법조인의 우울증이 이슈화한 지 20년이 흐른 지난 1일, 대구의 현직 부장판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고인은 평소 우울증을 앓았으며, 이 때문에 지난해 1년을 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이 있은 뒤 다른 사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는 판사로서의 삶이 버겁고 힘들었다는 고인의 생전 글이 인터넷 여기저기에 유포되고 있다.
는 판사의 자격에 대해 ‘무릇 판사는 겸허하고, 언제나 선행을 거듭하고, 무언가 결정을 내릴 용기를 가지며, 지금까지의 경력이 깨끗한 사람이라야 한다’고 했다. 판사는 청렴성 도덕성 공정성 직업윤리성을 갖춰야 한다는 게 국민이 기대하는 덕목이기도 하다. 이런 사회적 기대에 더해 타인의 죄를 심판하고 양자 간 분쟁에 최종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는 개인적 부담감, 사건의 잔상, 과중한 업무량, 상대적으로 낮은 처우와 법원 내 인사 적체는 사명감으로만 극복해 나가기에는 지나친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의사는 손이 흔들리면 수술 집도를 그만둬야 한다. 판사도 마찬가지다. 다만, 흔들리는 의사의 손은 주변인에 의해 쉽게 감지되지만, 홀로 최종적 판결을 선고하는 판사의 정신 건강은 외부에서 쉽사리 가늠하기 힘들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사법서비스는 그 특성상 서비스 수요자인 국민이 담당 재판부를 선택할 수 없다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판사의 정신 건강은 재판을 받는 국민 모두를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와 관련해 캐나다에서 실시하고 있는 법관 상담 프로그램은 주목할 만하다. 캐나다 사법부는 지난 10년 동안 외부 정신과 전문의와 계약을 맺고 상담이나 치료가 필요한 판사를 연계해 주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캐나다 전체 판사 3,200명 중 6.2%가 이 프로그램을 이용했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상담 치료를 받는 판사에 대한 익명성 보장이다.
미국 변호사협회가 운영하는 ‘판사를 위한 판사 카운슬링 프로그램(National Help line for Judges Helping Judges)’도 참고 할만하다. 이 프로그램의 특성은 알코올과 약물 중독, 우울증 등을 극복한 판사의 자원 신청을 받아 상담이 필요한 판사를 연결해 도움을 주도록 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도 판사의 신상정보 등에 대한 비밀 보장이 철저히 이뤄지고 있다.
판사 정신건강 돌보는 제도를
우리 사회에서는 가벼운 스트레스나 우울증 초기단계에서 정신과 전문의의 상담을 받는 것이 아직 그리 자연스러운 문화는 아니다. 하물며 법관이라면 개인사나 직업적 스트레스를 누군가에게 완전히 털어놓는다는 것이 더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법관이 프라이버시 노출이나 인사상의 불이익 등에 신경 쓰지 않고 철저한 익명성과 비밀을 보장받으며 전문적인 심리 상담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법관의 정신 건강을 돌보는 것은 사법서비스 수요자인 국민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김민조 변호사 서울지방변호사회 사무차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