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식에게도 휴대폰 사용법 묻기 어려웠는데"
"요새 080이라고 찍힌 문자가 자꾸 와.""아, 그거 열어보지 말어. 스팸여.""스팸은 애들 먹는 햄 아녀?"
대학생들이 주고 받는 대사를 듣던 노인들 사이에서 와그르르 웃음이 터졌다. 지난 2일 낮 12시서울 이화동에 자리잡은 종로 노인복지관의 한 강의실에서 코믹한 상황극이 펼쳐졌다. 노인들을 위해 휴대폰으로 전송된 대량 광고성(스팸) 메일을 알려주는 연극이었다. 배우들은 SK텔레콤의 대학생자원봉사단 써니 소속 학생들이었고, 관객은 이곳에서 무료 휴대폰 교육을 받는 18명의 노인들이었다.
이 가운데 한 달째 강의를 듣는 노부부가 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사는 이광영(72) 조혜숙(71)씨 부부는 매주 월요일이면 함께 종로노인복지관을 찾는다. SK텔레콤의 노인들을 위한 무료 휴대폰 교육인 '행복한 모바일 세상'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행복한 모바일 세상은 대학생들의 겨울ㆍ여름 방학기간 중 하루 2시간씩 5주 단위로 진행된다.
노부부가 이 수업을 빠지지 않고 듣는 이유는 1 대 1 맞춤 교육이기 때문이다. 참석하는 노인들마다 대학생 강사들이 한 명씩 배치돼 휴대폰 이용 방법을 알려준다. 덕분에 노부부는 휴대폰으로 문자메시지 보내는 방법과 특수 기호인 이모티콘 이용법도 알게 됐다. 이 씨는 "예전에는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고 받는 게 전부였다"며 "이런 기능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동안 누구 하나 노부부에게 휴대폰 이용법을 제대로 알려준 사람이 없었다. 조 씨는 "아들 하나, 딸 둘을 두었는데 모두 미국에 산다"며 "휴대폰 이용법을 몰라 고객센터에 전화해 본 적이 있는데 알아듣기 힘든 설명만 했다"고 전했다.
휴대폰 때문에 생긴 답답함은 행복한 모바일 세상에 나오면서 해소됐다. 조 씨는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컴퓨터로 옮긴 뒤 이메일로 미국에 사는 손자들에게 보냈다"며 "손자들이 보낸 '할아버지 할머니 멋쟁이'라고 쓴 이메일 답장을 받으면 너무 행복하다"고 좋아했다.
노부부는 잘 사는 축에 속하지만 휴대폰 등 첨단 기기 앞에서는 소외 계층이었다. 이 씨는 28년 동안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를 지냈고 롯데그룹 경영기획실장을 거쳐 파라다이스그룹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했다. 이 씨는 "예전에는 비서들이 휴대폰을 들고 다녀 내가 쓸 일이 없었다"며 "노인들을 위한 휴대폰 교육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부부는 휴대폰을 다양하게 이용한다. 지하철 노선도 확인하고 지인들의 연락처도 휴대폰으로 관리한다. 이 씨는 "휴대폰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돼 아주 신난다"며 "노인들이 이용하기 편하게 자판 및 화면 글자가 큰 휴대폰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05년 대장암에 걸려 1년 여 동안을 항암 투병으로 보낸 이 관(68)씨에게는 행복한 모바일 세상의 휴대폰 교육은 삶의 활력소가 됐다. 그는 이광영씨와 함께 노인들을 위해 복지관에서 격월로 발행하는 소식지 '누리알리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휴대폰 교육을 받은 뒤로 소식지에 싣는 사진을 모두 휴대폰으로 해결하고 있다. 그는 "예전에는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일이 고역이었다"며 "이제는 휴대폰으로 들꽃 사진 등을 찍어 블로그 등에 올리거나 소식지에 싣는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그는 휴대폰 덕분에 사회 활동의 폭이 넓어졌다.
이 관씨는 무엇보다 1 대 1 맞춤 교육이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그는 "각자 생활하기 바쁜 자식들에게는 휴대폰 이용법을 물어보기 힘들다"며 "이곳은 가장 궁금하고 가장 배우고 싶은 것을 그때그때 물어서 배울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진 촬영 외에 일정 관리 등을 모두 휴대폰으로 한다. 특히 알람 기능을 적극 활용한다. 그는 "약속 시간 등을 사전 설정해 놓으면 휴대폰 알람이 알려줘 놓치지 않는다"며 "기억력이 떨어지는 노인일수록 휴대폰의 각종 기능을 적극 활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래서 요즘은 욕심이 생겼다. 이 관씨는 "통화만 할 때는 몰랐는데 교육을 받고 보니 더 많은 기능을 갖춘 최신 스마트폰을 쓰고 싶다"며 웃었다.
휴대폰 교육에 자원 봉사로 참여해 강사를 맡은 김명철(23ㆍ성균관대 경영학과 3학년), 신규섭(25ㆍ건국대 경영정보학과 4학년 휴학) 씨에게도 좋은 배움의 기회가 됐다. 기억에 남는 일을 하고 싶어 자원봉사에 참여한 김 씨는 "열의를 갖고 수업에 참여하는 노인들을 보면서 고지식하고 답답한 분들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씻을 수 있었다"며 "노인들의 열정을 보면서 새삼 나를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집이 경주여서 서울에서 혼자 자취를 하는 신 씨도 "쉬는 시간에 노인들이 살아온 얘기를 湧만庸?미처 몰랐던 세상살이를 배울 수 있었다"며 "자취 생활을 걱정하며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노인들이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열정이 넘치는 노인들 덕분에 더러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현재 군 복무를 대신해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하는 신 씨는 새벽에 가끔 '짝꿍'의 전화를 받는다. 노인과 강사로 나선 학생들은 짝꿍으로 묶여 있다. 그는 "새벽잠이 없는 노인들이 영상전화를 걸어 안부도 묻고 새로운 휴대폰 기능도 물어올 때가 더러 있다"며 "괴로울 때도 있지만 나이 많은 친구를 만난 것처럼 재미있다"고 털어 놓았다.
그들도 노인들에게 휴대폰 이용법을 알려주면서 기존 휴대폰이 노인들이 쓰기에 불편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 김 씨는 "노인들을 위한 휴대폰 조차도 글씨가 작다"며 "화면 글자 뿐 아니라 시계, 메뉴명도 크게 표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 씨는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 등 자료를 컴퓨터로 옮기는 절차가 젊은이들에게도 복잡하다"며 "이를 좀 더 간소화해서 노인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 SKT '정보격차 해소' 봉사활발
SK텔레콤이 2007년부터 실시한 행복한 모바일 세상은 휴대폰 이용법을 몰라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에게 휴대폰 이용방법을 알려주는 무료 교육 프로그램이다. SK텔레콤이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진행하는 이 행사를 통해 전국 각지의 노인종합복지관에서 휴대폰 교육을 받은 노인들은 지난해 말까지 3년 동안 약 3,000 여명에 이른다. 올해 교육 예정인 2,215명을 포함하면 4년에 걸쳐 5,000명이 넘는 노인들이 혜택을 받게 된다.
강의는 SK텔레콤이 꾸린 대학생 봉사단 써니가 맡는다. 햇살과 '선한 이'라는 이중 의미를 담고 있는 써니는 SK텔레콤이 인재양성을 통한 사회발전 기여라는 그룹 이념을 확산시키기 위해 2003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대학생들이 사회적 약자를 돕는 활동을 통해 남을 돌볼 줄 아는 인재로 커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운영 취지다.
이들은 노인들을 한 명씩 맡아 1 대 1 맞춤 교육을 실시한다. 자원 봉사자들도 입소문을 타고 매년 늘고 있다. 처음 교육을 실시한 2007년에 357명이었으나 지난해 978명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고, 올해는 1,190명에 이를 전망이다.
교육 내용은 전화 걸기부터 문자 보내기, 휴대폰의 부착된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한 사진찍기, 사진을 PC로 전송하기, 각종 부가 기능 활용법까지 다양하다. 뿐만 아니라 스팸 메시지 및 보이스 피싱을 피하는 방법 등 휴대폰을 악용한 범죄예방교육도 포함돼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단순 기기 사용을 떠나 노인들의 정보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자원 봉사에 참여한 대학생들과 노인들이 수업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면서 세대 간 의사소통에도 기여한다"고 말했다.
교육은 주 1회 하루 2시간씩 총 5주에 걸쳐 기본 교육이 진행된다. 기본 교육을 마치면 희망자에 한 해 두 번째 5주 과정의 심화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수강 인원은 13명으로 제한된다. 특별한 자격 요건이 있는 것은 아니며 신청자가 많다 보니 복지관에서 추첨을 통해 뽑는다.
SK텔레콤은 행복한 모바일 세상의 교육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모바일 농활 등도 준비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2박 3일에 걸쳐 소외 지역 노인들에게 휴대폰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생활의 기본 도구가 된 휴대폰을 노인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교육 기회를 넓힐 것"이라며 "이를 통해 노인들이 사회로부터 느끼는 소외감과 세대 간 괴리감 등을 떨쳐내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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