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단참모장이 운전병을 성폭행한 사건을 해당 부대 지휘부가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한 사실이 드러났다. 대대장, 부사단장, 사단장이 보고를 받고도 수사, 체포 등의 합당한 조치를 취하는 대신 거꾸로 피해사병 가족에게 사건을 덮도록 무마, 회유했다는 것이다. 결국 절망한 가족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함으로써 사건이 표면화했다. 가해자 오모 대령이 다른 사병들에게 성폭행을 시도한 정황도 추가로 확인됐다.
드러난 사실은 군 성범죄가 종종 외부에 알려지는 것보다 훨씬 많으며, 대부분은 내부에서 묵살되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유난히 자부심이 강한 해병대에서 발생해 충격파가 더 큰 것일 뿐 전군의 상황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2002년 국가인권위 조사에서 전군의 성추행 피해경험자가 10%에 달한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온 적도 있고, 최근 육군과 공군 영관급 장교의 성추행이 잇따라 문제된 사례만 봐도 그렇다.
군대 내 강압적 성추행ㆍ폭행은 구타나 가혹행위보다 훨씬 악질적 범죄다. 성 노리개 취급을 받은 개인에게는 인격살인이자 군 조직에겐 기강과 전투력의 근본적 파괴행위다. 이 점에서 은폐시도 장교들 역시 지휘관의 자격이 없다. 원칙과 규율을 무너뜨리고, 상처 입은 부하사병을 외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군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초래한 그들에게 수천 병사의 지휘를 맡길 수는 없다.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함은 당연하다.
국방부는 2001년에도 '성(性)군기 위반사고 방지지침'을 만드는 등 수선을 떨었으나 이후 별다른 후속노력을 들어본 바가 없다. 문제가 생기면 실효성 있는 근본대책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소나기 피하기식 전시성 대책이나 궁리하니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차제에 군형법 상 동성(同性) 성범죄에 대해 2년 이하 징역으로 규정돼 있는 형량도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 미군법은 같은 범죄에 최고 무기징역형까지 선고하도록 돼 있고, 실제 2003년 카투사병을 추행한 미군 병장이 30년 형을 받은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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