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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plus/ 커버스토리 - 세계문화유산 된 안동 하회마을·경주 양동마을

입력
2010.08.0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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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의 효과 때문일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는 소식에 다시 찾아간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과 경주의 양동마을은 또 다른 느낌이다. 여름휴가 최고 성수기라 관광객들로 북적거렸지만 ‘훈장’을 거머쥔 이들 마을은 이전과는 다른 품격을 발하고 있었다.

안동 하회마을

하회마을은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방문으로 조용한 전통 마을에서 관광지로 느닷없이 부상한 곳이다. 이름 그대로 하천이 휘돌아 감싸는 물돌이 마을이다. 근엄한 양반과 일반 민중의 공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곳이다.

서애 류성룡을 배출한 풍산 류씨의 집성촌이다. 600여년을 지켜 온 양반가의 동네이면서도 민중놀이인 하회탈춤으로 더욱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지리적 여건으로 외침을 한 번도 겪지 않아 기와집과 토담집들이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예전 300 가구가 넘던 마을엔 지금 120여 가구, 23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강 건너 절벽 위 부용대에 서면 하회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부용대에서 하회를 내려다 보면 ‘풍류’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아늑한 마을에선 부드러운 음률이 퍼져 오르는 것 같다. 크게 휘돌아 나가는 강물과 한없이 편안한 모래톱과 솔숲이 절묘한 가락을 연주한다. 이마를 맞대고 이어진 기와지붕과 초가지붕의 변주도 손가락을 토닥거리게 한다.

몇 년 전 찾았을 때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음식점과 토산품점들도 대부분 마을 밖 한 곳으로 모아 놓은 덕에 마을은 한결 예스러워졌다. 집집의 텃밭엔 참깨와 옥수수들로 빼곡하다. 흙담과 어우러져 초록이 넘실대는 밭풍경이 마을을 더욱 정겹게 한다.

예전엔 하회를 화훼로 듣고 와 “꽃 단지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다던데 이제 세계문화유산이 됐으니 마을을 찾는 이들의 품격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하회마을 또한 준비할 것이 많아졌다. 세계문화유산이 관광지 하라고 달아준 훈장이 아닐 터. 지금껏 지켜온 전통을 그대로 유지해 달라는 정중한 부탁일 것이다.

몇 달 전까지 노를 저어 가던 나룻배가 이젠 볼품없는 천막지붕을 덧씌운 채 모터를 달고 달리는 모습도 보기 흉하다. 아직 마을 안에 남아있는 상점도 눈에 거슬리는 풍경이다. 좁은 주차장 때문에 몇 km를 줄 지어선 차량들에 대한 대책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격에 맞춰 바뀌어야 하는 것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경주 양동마을

설창산 자락에 안긴 마을의 생김새가 독특하다. 산자락이 말 물(勿)자 모양으로 갈라져 내려오는데 그 골 사이에 집들이 차곡차곡 들어섰다. 140여 채(한때 350여 채까지 있던)의 큰 마을임에도 마을 입구에서 볼 때 집들이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 연유가 여기 있다.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 두 성씨가 함께 어울려 사는 곳이다. 땅이 평평치 않아 집들은 언덕의 위 아래로 들어섰다. 대부분 번듯한 기와집이 맨 위에 자리잡아 3, 4채의 초가집을 거느리고 있는 모양이다. 예전 양반댁 일을 돕던 외거 하인들이 주변에 살면서 생긴 공간구조다.

수년 전만해도 빈 집이 많아 집에 살 사람들을 일부러 불러 모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 들어오려고 해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양동마을 주민이 될 수 있는 가장 큰 가산점은 초등학교 다닐 자녀가 있느냐 하는 것. 한때 폐교가 될 뻔한 마을의 초등학교를 살리고, 마을에서 뛰노는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학생 수는 80명을 넘어섰고 이제는 시설을 증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양동마을 주민인 이지휴(62)씨는 “한옥집만 있다고 세계문화유산이 된 것은 아닐 것”이라며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전통 관습이 살아 있고, 올곧은 유교 정신이 지금껏 꽃을 피우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마을을 자랑했다.

과거 500년을 버텨온 양동마을의 뒷심은 마을 뒤의 드넓은 안강들에서 비롯된다. 이씨는 “폭이 40리, 길이가 100리에 이르는 들판”이라며 “지금은 안강들로 알려졌지만 양동들이 원이름이다”고 했다. 조선 철종 때는 이 마을에 만석하는 집이 한 곳, 천석하는 집이 5집이나 있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전통마을을 찾을 때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시도 때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관광객을 보면 동물원 원숭이가 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자기 집이라면 안 그랬을 것을 신발을 신은 채 마루에 올라서지 않나, 공개되지 않은 안채까지 기웃거려 낮잠도 편하게 못 자게 만든다고 불평이다.

안동ㆍ경주=글ㆍ사진

■ 꼭 봐야 할 곳들

● 하회마을

삼신당

마을의 가장 중심, 제일 높은 자리에 있는 600년 넘은 느티나무다. 나무는 이제 막 해산을 하려는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삼신당이란 이름도 이에서 연유한다. 나무가 있는 자리는 마을의 혈자리로 주민들은 매년 이곳에서 당제를 지낸다.

원지정사

서애의 정자다. 낙동강과 그 건너 기암 절벽 부용대가 펼치는 아름다움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만송정 송림

처음 만 그루를 심었다고 하는 솔숲이다. 하회의 땅이 아무리 명당이라고 해도 허한 곳이 있기 마련. 그곳을 메우기 위해 만든 비보숲이다. 모래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 역할도 하고 있다. 재작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하회 별신굿 탈놀이도 이곳 만송정 송림 모래톱을 무대로 한다.

● 양동마을

서백당

제일 안쪽 골짜기인 내곡에 있다. 이 마을에 처음 자리잡았다는 손소 공이 성종15년(1454년)에 지은, 월성 손씨의 종택이다. 설창산의 혈맥이 집중된 곳으로 특히 건넌방 자리는 3명의 큰 인물을 내는 자리라 했다. 손소 공의 둘째 아들 손중도 선생이 태어났고 그의 조카가 되는 회재 이언적 선생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이후 손씨 집안에선 남은 1명의 인물이 손씨여야 한다며 며느리 출산 때는 방을 내줘도 딸에게는 허락치 않는다고 한다.

무첨당

서백당이 손씨 종택이라면 무첨당은 이씨의 종택. 사랑채의 날아갈듯한 처마와 정밀하게 조각된 난간들이 세련된 솜씨를 보인다. 대원군이 방문해 썼다는 죽필편액 ‘좌해금서(左海琴書)’가 걸려있다. 가옥은 보물 제411호로 지정됐다.

관과정

마을 입구 쪽 언덕에 있는 관가정은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듯 자손이 커가는 것을 본다는 이름처럼 드넓은 논들이 발 아래로 펼쳐져 시야가 시원하다. 우재 선생이 살던 곳이다.

향단

마을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화려한 고택. 회재 선생 때 지어졌다. 연세든 모친을 모시고 싶다는 회재의 간곡한 청에 중종이 경상도관찰사를 하며 모친과 함께 살라고 지어줬다. 보물 제412호다.

■ 여행수첩

하회마을은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에서 나와 35번 국도의 풍산방향으로 달린다. 풍산읍을 지나 916번 지방도로를 갈아타고 지보 방향으로 가다 보면 하회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인근의 부용대, 병산서원도 함께 둘러보면 좋다. 피서철이라 관광객이 몰린다. 오전 10시 이전에 찾아가는 게 좋다. 관광객이 많을 땐 주차장에 들어가려고 2km 이상 차가 밀려있기도 한다. 주차료 2,000원, 입장료 2,000원, 셔틀버스비 왕복 1,000원. 자꾸 지갑을 열게 만들어 짜증이 나기도. 하회마을 관광안내소 (054)852-3588

양동마을은 대구-포항간 고속도로가 가깝다. 서포항IC에서 나와 31번 국도와 68번 지방도를 갈아타고 안강읍까지 달린다. 안강에서 28번 국도를 타고 포항쪽으로 조금만 가면 좌회전해 양동마을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입장료는 따로 없다. 양동마을 관리사무소 (054)762-2630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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