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노 다케시가 TV 오락프로그램에 나와서 농담하는 것을 보면 아주 낯설다. 영화 의 김준평이 뇌리에 박혀 있어서다. 내가 본 가장 폭력적이고 비정한 영화에서, 소름 돋는다는 연기가 저런 거구나 실감나게 했던 그였기 때문이다. 내게 그는 배우가 아니라 그냥 김준평이었다.
양석일의 원작을 번역한 김석희의 통찰처럼,'예리한 일본도가 아니라 무딘 부엌칼로 뭉텅 썰어낸 살점이 자갈밭에 뒹구는 듯한' 그 잔혹한 이야기는 영화에서 끝나지 않고 나를 오래 심란하게 했다. 영화는 예리한 일본도로 정직하게 발라낸 사실만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재일동포의 삶의 어떤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 요술 확대경을 들이대며 상처를 헤집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게 어디 김준평 한 사람만의 이야기겠는가.
그 후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궁금하다면, 한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오사카의 코리아타운 쓰루하시(鶴橋)가 답이 될지 모르겠다. 일제가 히라노(平野)강 치수공사에 한인들을 동원하면서 조성됐다는 그 동네는 바로 의 배경이기도 했다. '학의 다리'라는 이름은 옛날에 학들이 많이 날아와 앉았던 다리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졌다는데, 역의 고가 밑으로 학 대신 들어와 앉은 것은 빽빽한 상점들이다. 김준평이 착취를 일삼던 공장, 치마저고리 차림의 영희가, 겁에 질린 마사오가 휘적휘적 걸어 나올듯한 집이 여긴가 저긴가 싶게 골목들은 시간이 멈춘 듯 나있다.
분식집 정육점 생선가게 야채가게 신발가게 알록달록한 옷가게들이 종횡으로 미로처럼 뻗어있는 시장은 어릴 적 시장골목을 떠올리게 한다.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이 내뿜는 땀내와 열기, 뜨거운 철판 위의 기름 등이 범벅된 시장은 온갖 열기로 들끓었지만, 난바의 화려함도 니혼바시의 낭만도 없는 그 풍경은 어딘지 남루했다. 일본 제 2의 도시의 그것이라기에도, 눈부신 경제성장을 자랑하는 조국이 있는 일본 최대 코리아타운의 그것이라기에도. 다행히, 단박에 동포임을 알아본 부산집 아주머니의 친절과, 떡볶이와 순두부를 앞에 두고 젊은이들과 어깨를 부딪쳐야 했던 국경 없는 작은 식당의 활기 덕분에 쓸쓸한 감상을 추스를 수 있었다.
몇 정거장 거리에 있는 오사카동양도자박물관이 조금쯤 위로가 될까 하는 생각에 걸음을 옮겼다. 오사카 초대 영사였던 고 이병창 박사가 특히 오사카 '동포들의 자긍심'을 위해 기증한 한국도자기가 축을 이루는 박물관이다. 그러나 고려청자주전자 특별전이 열리고 있던 그날, 비색의 도자기 위로 학이 날고 포도가 익어가는 세계는 쓰루하시와는 너무 다른 풍경이었다. 생각하면 든든한 마음의 고향일 테지만, 선뜻 삶이라는 전장에서 무기를 내려놓고 악기를 들라고 권할 용기가 날 것 같지 않았다.
문득 몇 년 전 LA에서 보았던 일본인타운과 일본이민사박물관을 상기했다. '리틀 도쿄'의 정갈한 거리도 인상적이었지만 그들의 발자취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이민사박물관은 이방인이 보기에도 뭉클한 그 무엇이었다. 상처는 훈장처럼 빛났다.
그러고 보면 김준평이 그토록 자식에 집착했던 것도, 영희가 바닥에서 바닥으로 패대기 쳐지면서도 끝내 삶을 놓지 않았던 것도 어쩌면 잊히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그들이 온몸으로 기록해 온 이 시대의 질곡을 더 늦기 전에 기억해 주는 것, 그게 우리가 할 일인 듯싶다. 오사카의 한국이민사박물관을 기대해 본다. 그것은 고려청자를 더 빛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성혜영 박물관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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