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린이집 학부모 모임이 있었다. 같은 반 엄마들이 퇴근 후 저녁시간에 어린이집에 모여 아이들이 갖고 놀 장난감을 만들었다. 아이가 자주 이야기하는 친구들의 엄마들을 한 자리에서 만난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만남에 익숙하고 나름대로 즐긴다고 생각했지만 학부모로서의 만남은 솔직히 아직 좀 긴장됐다.
평소 쳐다보지도 않던 바늘과 실을 부여잡고 서툰 바느질을 하면서, 아이가 말하던 친구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리고 처음 만난 엄마들 얼굴과 연결시키며 육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2시간 반이 금새 지났고 긴장은 점점 누그러졌다. 이젠 길거리를 지나다 마주쳐도 누구 엄마 하고 금새 알아볼 수 있을 듯하다.
누군가의 얼굴을 알아본다는 것, 참 특별한 능력이다. 소나 말은 서너 마리만 모여 있어도 그 녀석이 그 녀석 같은데, 사람은 훨씬 많아도 확실히 구별한다. 소나 말의 얼굴도 분명 각기 다를 텐데 우리 눈과 뇌는 그 차이를 잘 찾아내지 못한다. 사람 얼굴은 일란성쌍둥이까지도 구분하는데 말이다. 어떤 과학자들은 사람 대뇌에 얼굴 인식을 전담하는 영역이 따로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1980∼90년대에는 그 영역을 밝혀냈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오기도 했다.
‘타인종 효과’를 생각하면 더 희한하다. 우리와 비슷한 동양인의 얼굴은 비교적 잘 구별하지만 백인이나 흑인이 여럿 있으면 다 비슷하게 생겼다고 느껴진다. 또 유명인은 캐리커처만 봐도 누군지 금방 알아채지만 일반인은 오래 만나거나 여러 번 봐야 얼굴을 기억한다. 과학자들은 우리 뇌가 친숙한 얼굴은 세부적인 특징을, 낯선 얼굴은 전체적인 모양을 중심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긴다고도 설명한다.
29개월인 우리 아이도 밖에서 친구를 만나면 멀리서도 금새 알아보고 신나게 달려간다. 친척과 이웃아주머니, 경비아저씨 등 수많은 사람의 얼굴을 자연스럽게 구분한다. 돌이켜보면 훨씬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포대기에 싸여 있을 때도 자지러지게 울다 엄마가 다가온 걸 보면 곧 눈물이 잦아들곤 했으니 분명 엄말 알아봤던 것 같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고유한 얼굴 인식 능력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이 능력이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진화하는데 크게 도움됐다는 설명도 있다. 타인 얼굴을 잘 알아봐야 동지인지 적인지 가릴 수 있었을 테니까.
최근 친한 선배와 차 한잔 하려고 들른 카페에서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얼굴에 잠깐 시선이 멈췄다. 기억 속 초등학교 동창의 얼굴과 일치했다. 동창도 나를 알아본 듯했다. 하지만 카페를 나올 때까지 우린 서로 인사하지 않았다. 얼굴 인식 능력을 항상 100% 활용하는 우리 아이와 달리 난 그날 내 특별한 능력을 썩혔다. 이런 게 아이와 어른의 차이인가 싶다.
임소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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