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아주 특별한 곳에서 여행 중이다. 지난 인연을 잠시 접고 전화도 되지 않고, 편지를 보낼 수도 없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오지에서 상상 속에서만 꿈꾸었던 세계를 몇 개월째 체험하고 있다."
올해 3월 스님이 되기 위해 합천 해인사로 출가해 화제를 모았던 차창룡(44) 시인이 그간의 행자 생활을 담은 글을 띄웠다. 차 시인은 해인사 월간지인 '해인(海印)' 8월호에 '동명'이라는 법명으로 기고한 '출가 - 내 생애 가장 특별한 여행'이란 글에서 출가 생활의 소회를 담담하게 전했다.
은사인 지홍 스님(불광사 회주)의 소개로 해인사 강원을 찾아 3,000배를 끝낸 뒤 치른 삭발식에 대해 그는 "정말로 내가 출가했다는 실감이 삭발하면서 느껴졌고, 욕락을 추구했던 지난 시절이 싹둑 베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며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 새로운 땅에 들어섰음을 실감하면서 삭발이 출가 수행자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적었다.
그는 이어 어색한 행자복을 입고,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해서는 안 되고 걸을 때는 두 손을 모아 손마디를 최대한 보이지 않게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거나 웃어선 안 되며 스님들과 이야기할 때 눈을 쳐다보면 안 되고, 해우소에 갈 때는 상의를 벗고 들어가야 하는 등 절집의 법도를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새로 배워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또 저녁 9시에 취침해 새벽 2시50분에 기상하는 꽉 짜인 일정으로 팔 다리, 어깨가 쑤시고 아프지만 마음은 오히려 한가해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썼다. 공양주 생활 2개월을 거쳐 국을 끓이는 갱두 소임을 맡아, 채소로 끓일 수 있는 대부분의 국을 능수능란하게 끓일 수 있게 된 것도 보람이라고 전했다.
차 시인은 그러나 선방스님들의 수발을 들 때나 귀빈의 상을 따로 차릴 때 번거로움과 짜증이 든다며 "(그럴 때면) 마구니(魔軍ㆍ수행을 방해하는 악마, 방해꾼)의 군사력이 막강해지곤 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옛 여인에 대한 생각도 떨쳐버리기 힘든 마구니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면서도 "내가 힘든 행자생활을 견디고 있는 것은 어쩌면 늦은 나이에 출가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속가에서 해볼 것 다 해보았는데 뭘 더 바랄 것인가. 결혼도 해봤고, 이혼도 해봤고, 직장도 여러 곳 다녔고, 긴 세월 대학에 몸담으면서 박사학위도 받았고, 여러 대학에서 강의도 해봤고, 글을 써서 명예도 얻었다. 이제 해보지 않은 것은 여법한 수행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단한 신심도 아니고 대단한 원력도 아니다"며 "출가 전 내 생애 가장 특별한 여행이었던 불교성지 순례와 같은 여행을 지금 이곳 행자실에서 하고 있을 뿐이다"라며 글을 맺었다.
차 시인은 1989년 등단해 , 등의 시집과 을 펴냈고, 1994년에는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받았다. 해인사 측은 4일 "차 행자는 이달 말 직지사로 옮겨 3주 간 교육을 받은 후 사미계를 받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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