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이 오일머니를 캐온 황금밭 중동이 가시밭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이 우리 정부에 이란 경제 제재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한데다, 리비아와의 외교 갈등이 국내 기업 제재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면서 이들 국가에 진출한 국내 기업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란은 국내기업이 지난해 60억달러, 올 상반기 25억달러 이상을 수출하는 중동지역 최대 수출 시장. 리비아는 국내 건설업체가 범중동권 국가에서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다음으로 많은 해외수주 실적을 올린 시장이다.
‘중동 리스크’의 불똥이 튈까 가장 염려하고 있는 곳은 건설업계. 현재 리비아에서는 국내 20개 건설업체가 진출해 92억달러에 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아직까지 직접 피해를 호소하는 기업은 없지만, 상황이 악화할 경우 국내 건설업체들의 수주 및 공사대금 수령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4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국내 건설업체가 리비아에서 수주한 공사 금액은 2004년 2억달러에서 2005년 200만달러, 2006년 7,700만달러, 2007년 54억달러, 2008년 16억달러, 지난해 31억달러 등으로, 최근 몇 년간 수주액이 큰 폭으로 증가한 ‘효자’ 시장이다.
리비아에서 가장 많은 공사를 진행중인 대우건설 관계자는 “현재 이뤄지는 공사 대부분이 현지 정부가 필요로 하는 공공기반시설 사업이라 공사 중단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면서도 “다만 신규 사업인 경우에는 현지 발주 사정도 녹록치 않을 것이고, 국내 기업들도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보다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에 제품을 수출하는 철강 화학 자동차 업체들은 미국과 EU의 이란 경제제재 압박이 거세지면서 수출대금 결제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상당수 기업들이 금융제재 후 국내은행의 현지 지점 대신 두바이 등 다른 아랍권 은행쪽으로 결제계좌를 바꾸는 등 대응책 마련을 했지만, 제재 수위가 높아질 경우 이란 은행이 발행해준 채권이 휴지조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실제로 따낸 공사마저 계약이 파기된 사례도 있다. GS건설은 미국의 이란 경제 제재가 강화되면서 지난해 10월 이란에서 수주한 1조4,000억원 규모의 가스탈황시설 공사 계약이 지난달 파기됐다. 대림산업과 두산중공업 등 현지 공사를 진행하는 건설업계는 당분간 추가 수주는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으로 보고 있다.
강신영 해외건설협회 지역2(중동담당)실장은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좀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자국 경제 제재에 나선 나라의 기업에 공사를 맡길 정부는 없다”면서 “현 상태라면 국내업체가 신규 공사를 따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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