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백화점들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불법 행위나 불공정 거래도 서슴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약자인 납품업체들을 통해 경쟁 백화점의 영업비밀을 빼내는 게 대표적이다.
롯데쇼핑과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백화점업계의 '빅3'는 2008년 말 입점 업체들로부터 경쟁 백화점의 일별ㆍ월별 매출 등 영업정보를 빼냈다가 공정위로부터 3억2,000만~7억2,8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백화점과 납품업체는 전자정보교환시스템(EDI)을 통해 상품 수주ㆍ발주 등의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데, 빅3 모두가 납품업체들에게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제공토록 압박해 경쟁사의 영업비밀을 파악해 자신들의 영업전략에 활용한 것.
특히 이들 백화점은 경쟁사의 영업정보를 근거로 납품업체들의 영업활동에 족쇄를 채웠다. 자사에서의 할인행사 강요, 판매 수수료율 인상, 매장위치 변경 등은 물론 경쟁 백화점에서의 할인행사 및 입점 제지, 납품 물량 강제 조정 등의 불법행위를 일삼았다는 사실이 공정위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하지만 백화점 빅3는 이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 한마디 없이 과장금 부과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하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보였다. 지난 4월 서울고법은 롯데쇼핑과 현대백화점에 대해선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고, 신세계백화점에 대해선 증거 부족을 이유로 과징금 면제 판결을 내리면서도 부당한 영업비밀 취득과 함께 불공정행위가 있었을 개연성도 인정했다.
문제는 이 같은 불법 행위가 여전하다는 점이다. 백화점협회 측은 "작년부터는 EDI를 통해 경쟁사 매출 정보를 취득하는 관행이 사라졌다"고 했지만,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실시한 중소기업 애로실태 조사에 따르면 입점 업체 121곳 중 16곳(13.2%)이 경쟁 백화점의 영업정보 제공을 강요 받았다. 한국유통학회는 이를 "업종별로 한두 업체만 포함됐어도 사실상 경쟁사의 영업비밀 전체를 훔쳐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 의류업체 관계자는 "백화점들은 매년 2월과 8월경에 자체 평가를 통해 입점 업체들의 매장 위치를 조정하고 퇴점 여부를 결정하는데 주요한 평가기준의 하나가 업무협조 부분"이라며 "언제라도 EDI에 접속할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요구하면 줄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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