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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고래 경(鯨)자 가지고 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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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고래 경(鯨)자 가지고 놀기

입력
2010.08.0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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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해 더 전의 일이다. 교토박물관 앞에 있는 조그만 스시식당에 가게 되었다. 안내하는 이가 3대인가, 4대인가 가업으로 이어져오는 전문집이라고 소개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이 식당 벽에 주방용으로 쓰는 폭이 넓은 사각 모양의 칼이 한 자루 걸려 있었다.

젊은 주인이 중국에서 요리 공부를 했는데 떠나올 때 받은 스승의 선물이었다고 했다. 칼에는 모든 생선들의 이름이 한자로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나는 물고기 어(魚)자가 들어가는 한자가 그렇게 많을 줄 몰랐다. 젊은 주인은 그 물고기 이름들이 모두 살아서 튀어 나오는 꿈을 자주 꾼다고 했다.

고래바다에 나가 고래를 만나지 못하는 날이면 푸른 바다 위에 경(鯨)자를 풀어놓는다. 고래 경(鯨)은 수컷고래를 뜻한다. 수컷만 풀어 놓으면 외로울 것 같아 암컷고래 예(鯢)를 함께 풀어놓는다. 고래는 경예(鯨鯢)가 한 쌍이니 이 어찌 정답지 않겠는가.

고래 경(䲔)자가 있는데 鯨과 같은 글자니 함께 풀어놓는다. 돌고래를 뜻하는 한자는 돌고래 패(䰽)가 있고, 돌고래 부(䱐)가 있고, 돌고래 국(䱡)이 있다. 돌고래 포(鯆)도 있다. 거기에 수고래 보(䲕)도 있으니 이는 흔히 쇠물돼지라 부르는 알락돌고래를 뜻한다. 돌고래 䰽, 䱐, 䱡, 鯆, 䲕를 무리무리 풀어 놓는다. 모두 제 이름의 고래, 돌고래로 튀어 오르는 즐거운 꿈을 꾸며!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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