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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원의 자녀 교육보감] (19) 사랑과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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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원의 자녀 교육보감] (19) 사랑과 투자

입력
2010.08.03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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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돈이 많아야 한다는 생각이 상식이 됐다. 해마다 사교육비는 늘고, 부유한 지역의 명문대 입학률이 높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다보면 상식을 넘어 굳은 신념으로까지 나아간다. 어느 순간부터 ‘사교육 더 시키기’ 경쟁에 나선 학부모들이 적극적으로 ‘부자 부모만이 자식 농사에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유포시킨다. 이제 학부모들은 물론 우리 사회 전반에서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끝났다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돈이 없으면 자녀교육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생각은 자녀를 투자의 대상으로 보게 만든다. 사교육비를 많이 투자하면 할수록 기대한 효과가 비례해서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사교육의 효과가 입증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교육비 투자에 비례해 자녀의 성적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부자 부모를 둔 학생들의 공부 실태를 살펴보면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전교 일등이 있지만, 꼴찌도 드물지 않다. 여러 이유 중에서도 결정적인 차이는 ‘사랑’이다. 사랑이 담긴 투자인가 아니면 사랑은 빠지고 결과에 대한 기대만 들어 있는 투자인가 하는 점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지키면서 투자한 경우에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투자 규모는 큰 문제가 아니다. 사랑이 들어간 투자는 단순히 돈의 액수만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자녀가 부모의 사랑하는 마음을 감지한 순간, 자신이 부모로부터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라는 점을 깨닫는 순간 자녀의 심리는 백배, 천배 강해진다. 반면 사랑하는 마음이 빠진 투자는 아이를 심리적으로 취약하게 만든다. 자신이 단지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대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면 자존감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자연히 부모와의 관계도 나빠지고 부모 입장에서 볼 때 빗나가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사랑받고 있다는 감정의 효과에 대해 생각해 보자. 투자를 할 만큼 했는데,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학부모라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했느냐를 따지기 전, 요즘 아이들의 심리상태를 조금만 들여다 보자. 대부분 치열한 경쟁 스트레스에 얼마나 찌들어 사는지, 그 탓에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매사에 의욕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은 늘 짜증을 내며 자극적인 게임이나 퇴폐적인 문화가 아니면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부모에게서 사랑받고 있다는 감정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에 대한 원초적인 평가의 근거를 제공하는 부모로부터 사랑을 느끼지 못한 채 투자대상으로 전락한 아이들의 심리상태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이들은 사랑이 들어간 투자와 그렇지 않은 투자의 차이를 분명하게 느낀다. 후자의 경우 투자한 만큼 뽑아내기 위해서, 혹은 부모의 자기만족을 위해 관심을 쏟는다고 생각한다. 결국 부모 주도의 투자가 실패하면 아이들은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대부분 부모에게 화살을 돌린다. 반대로 ‘공부를 못해도 사랑한다’, ‘너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다’, ‘너로 인해 부모로서 새로운 행복을 누리게 돼 너무도 고맙다’는 식의 말을 수시로 듣고 자라는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확신한다. 날이 갈수록 자존감은 높아지고, 공부에 의욕이 붙으며, 결코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다.

잘 포착되지 않지만 아직 개천에서 용이 나고 있다. 사교육의 기여도가 급격히 올라가서 사교육을 활용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불리한 상황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잘 살펴보면 여전히 개천 곳곳에서 용이 태어나고 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이지만 자녀에게 사랑을 듬뿍 담은 응원을 보내는 부모가 존재한다는 얘기다. 돈은 없지만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누구보다도 강한 부모 밑에서 성장한 아이들의 학습 동기는 실로 강력하다.

자녀에게 얼마를 투자할 것인지를 생각하기 전에 부모로서 꼭 해야 할 역할에 대한 재정비를 하기 바란다. 시급하게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올바른 부모 노릇은 돈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에 있다. 사랑의 투자가 아닌 돈만의 투자를 부추기는 주변의 학부모 문화를 경계하자. 섣부른 투자가 오히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에 그늘을 드리울 수 있다. 아이의 공부는 사랑에 비례하는 것이지 절대 투자에 비례하지 않는다. 돈으로 진정한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려고 마음먹는 순간 실패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돈이 아니라 지금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아이에게 주자. 그것이야말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의 투자다.

사랑받는 아이의 학습 동기는 점점 강해지지만, 투자의 대상이 된 아이의 학습동기는 점점 약해진다.

/비상공부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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