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상생협력의 사각지대가 적지 않다. 특히 의류ㆍ 식음료 등 중소 영세 납품ㆍ입점 업체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통업계의 현실은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독점적 지위를 앞세운 대형 백화점들이 판매수수료(마진)횡포 등을 통해 경쟁적으로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고 있는 반면, 중소 업체들의 한숨 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세 업체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유통업계의 불합리한 현주소를 3회에 걸쳐 진단한다.
최근 롯데ㆍ신세계ㆍ현대 등 국내 주요 백화점 모두에 입점해 있는 한 중소 의류업체는 백화점 영업 중단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지난해 경기침체 속에서도 매출액이 전년 대비 6% 성장할 정도로 경쟁력을 인정받은 이 업체 관계자는 "수수료를 수시로 인상하는가 하면 세일이나 행사판매처럼 판매가를 낮췄을 때조차 정상 수수료를 요구하는 일도 있다"며 "우리 입장에선 자구노력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은 제품가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러면서 "백화점에 입점해 있으면 브랜드 인지도나 유통구조 면에서 유리한 건 사실이지만 계속 이런 부당한 상황에 끌려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판매수수료는 백화점이 납품ㆍ입점 업체들로부터 제품의 유통ㆍ판매 과정에서 정보와 장소 제공, 마케팅 수행 등의 대가로 받는 돈이다. 백화점협회는 수수료 징수의 근거를 "납품업자로부터 상품을 받아 판매하지만 백화점의 판매활동을 통해 제품이 가지고 있는 이상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수수료 징수의 수준이다. 한국유통학회가 올해 초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한 '대형유통업체의 판매수수료 현황 및 정책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백화점의 평균 수수료율은 28% 안팎이다. 하지만 내부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수수료율이 너무 과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실시한 중소기업 애로실태 조사에 따르면 입점업체 121곳 중 수수료율이 높다는 답변이 무려 87.6%였고, 이 중 57.0%가 '매우 높다'고 답해 이들 기업의 체감지수를 짐작케 한다.
백화점협회는 "판매관리비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기 때문"에 수수료를 인상할 수 밖에 없다지만, 유통학회는 "인건비와 광고선전비는 하락 추세이고 감가상각비의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반박한다. 중기협 조사에서 업체들은 수많은 판촉행사와 거액의 인테리어 비용 등을 감안하면 20% 초반대가 적절한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대기업이 참여한 품목이 많은 신사복이나 대형가전, 해외명품 등의 경우 수수료율이 평균보다 훨씬 낮다는 점도 문제다. 패션잡화의 경우 해외명품의 평균 수수료율은 15% 이하지만 국내 브랜드는 35~40%에 달한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브랜드 인지도나 소비자의 선택 추이 등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한 숙녀복 납품업체는 "대ㆍ중소기업 차별이자 국내 브랜드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했다. 중기협 조사에선 의류업체의 91.7%, 패션잡화업체의 95.0%가 차별을 호소했다.
수수료율 인상 시기도 들쭉날쭉이다. 유통학회에 따르면 입점업체 중 매년 인상된다는 답변은 35.5%였고, 수시로 인상된다는 업체도 26.4%였다. 한 패션업체 관계자는 "사실상 백화점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올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대다수 납품ㆍ입점 업체들은 속앓이만 하고 있다. 대형 백화점들의 독점적인 지위 때문이다. 한 납품업체 관계자는 "대형 백화점들이 상생협력을 얘기하는 걸 보면 웃음이 나온다"며 씁쓸해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 이해삼 한국제화아카데미 원장
“백화점의 반응이요? 수수료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앞으로 또 시위하러 올 거냐고 묻더군요.”
백화점의 높은 입점 수수료 문제는 갑을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제조업체로서는 섣불리 제기하지 못하는 문제다. 하지만 지난해 5월 민주노총 산하 서울일반노동조합 제화지부의 회원들은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앞에서‘백화점 수수료 인하운동’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비 후원 기능학교인 한국제화아카데미의 원장으로 당시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이해삼씨는 “제화 기능인의 생존 문제가 백화점 입점 수수료율에 달려 있다”며 절박한 심정을 전했다.
“백화점 입점 제화 업체들은 35~37%의 판매 수수료를 백화점에 지불합니다. 20만원짜리 구두 한 켤레를 팔면 7만원에서 7만4,000원을 백화점이 가져가는 셈이죠. 여기에 매년 수수료는 1~2%씩 오르는 추세여서 이들 제화 업체의 하청을 받아 일하는 서울 성수동 일대 제화 기능공의 처우는 10년째 답보 상태에 있습니다.”
기자회견에 앞서 지난해 3월 제화지부의 이름으로 롯데쇼핑과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 등에 고통 분담 차원의 수수료인하에 대한 의견을 묻는 내용증명을 보낸 이씨는 “백화점이 아예 상대조차 해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백화점을 설득하는 일에 지쳤다는 그는 이제 소비자의 발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방법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