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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의 고난속에 큰 기회있다] <57> 국제회의와 해외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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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의 고난속에 큰 기회있다] <57> 국제회의와 해외강연

입력
2010.08.0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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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총재가 정례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국제회의는 여섯 개쯤 된다. 매년 서너 차례 참석해야 하는 국제결제은행(BIS) 회의를 비롯해서 동남아 중앙은행회의(SEACEN), 동남아·뉴질랜드·호주중앙은행 회의(SEANZA), 동아태 중앙은행회의(EMEAP), IMF와 세계은행 총회, G20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 등이다. 부총재가 대신 참석한 경우가 있었는데도 나는 4년 임기 중 20여 개국에 약 30회의 회의출장을 다녀왔다. 이러한 국제회의 덕택으로 좀처럼 가기 어려운 네팔 스리랑카 몽골 베트남 피지 브루나이 칠레 두바이 등을 찾아 볼 기회도 있었다.

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중앙은행 총재 모임은 BIS회의이다. BIS는 1930년에 창설되어 지금 60여 개국이 참여하고 있는데 본부는 스위스 프랑스 독일 등 세 나라가 만나는 지점인 스위스 바젤에 있다. 이 회의에는 회원국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두 모여 세계경제와 금융안정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한다.

이 회의에서 나는 미국의 부동산 거품에 대한 깊은 우려를 두어 차례나 미 연방준비위원회 그린스펀 의장에게 물은 일이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일부 지역에 국한된 국지적 현상이어서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는 답이었다. 그런데 2,3년 뒤인 2008년 미국에서 부동산 거품으로 세계금융위기가 촉발된 것을 보고 미국 중앙은행의 예측력에도 문제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BIS총회에 북한을 초청하자고 여러 차례 요청한 바 있는데 2004년 6월 회의에는 북한 김완수 인민은행장이 옵서버로 참가한 일이 있다. 북한 중앙은행은 지점이 220개이고 직원이 2만 명이나 된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북한에서는 인민은행이 중앙은행 업무뿐 아니라 시중은행 업무와 보험업무 그리고 공기업의 수입지출 업무까지 하고 있으며 전국적인 지점망을 가지고 있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자리는 2002년 6월 26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의 동남아 중앙은행 총재회의이다. 한국의 중고 버스와 택시들이 한글표지판이 붙은 그대로 시내를 누비며 다니고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서도 아주 우호적이었다. 그런데 그날이 마침 한국과 독일의 월드컵 4강전이 있는 날이었다. 그날 밤 한국교포 200~300명이 빨간 응원복을 입고 그곳 한국식당에 모인다는 것이어서 나는 한국대사와 같이 참석하여 힘껏 응원했는데 아쉽게도 우리가 져서 준결승 진출의 길이 막히고 말았다.

나는 이러한 국제회의에 나갈 때마다 기회만 있으면 대학·중앙은행·연구단체 등을 방문하고 재임 4년 중 모두 14회의 강연을 하였다. 내가 방문한 대학은 베이징(北京)대학, 상해의 명문 푸단(復旦)대학, 톈진의 명문 난카이(南開)대학, 몽골의 울란바토르 국립대학 등이다.

베이징 대학의 강연은 당시 베이징대 중국경제연구소장으로 있었던 린이푸(林毅夫)박사(현 세계은행 부총재)의 초청으로 두 차례 있었다. 특히 2005년 10월 14일 ‘아시아경제의 장래’ 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아시아경제는 20년 안에 세계경제의 중심이 될 것이며 2040년의 세계소득분포는 아시아 42%, 북미 23%, 유럽 16%, 기타 20%가 될 것이라는 한국은행의 연구결과를 인용했다. 그 반향은 매우 커서 베이징의 21세기경제신문에서는 1면 톱기사로 올렸고 다른 신문 방송에서도 크게 보도한 일이 있다.

2002년 6월 27일의 몽골 울란바토르 국립대학에서는 ‘한국은 어떻게 경제개발에 성공했는가’ 라는 주제의 강연을 했다. 이 자리에서 나는 경제개발을 위해서는 개방체제와 외자도입 그리고 선진 기술과 제도의 모방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말했다. 학생들이 강당을 가득 메웠는데 특히 여학생들이 많았고 한국에서 공부한 학생들도 끼어 있었다. 총장으로부터 대학 전체 학생 중 여학생이 6할을 넘는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내가 퇴임하기 약 한달 전인 2006년 2월 24일 한일간 외환협력협정 조인을 위해 일본은행에 가서 ‘경제발전에 있어서 중앙은행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했다. 여기서 나는 중앙은행은 물가뿐 아니라 경제성장과 외환안정 그리고 자산가격 안정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확고한 독립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강연에는 후쿠이 도시히코(福井俊彦 )총재와 사라가와 부총재(현 총재) 그리고 정책위원 등 간부직원 들이 모두 참석하였는데 특히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관한 많은 토론이 있었다. 강연이 끝나고 후쿠이 총재 내외는 우리 내외를 일본의 전통극인 가부키에 초대하여 주었다. 그 내외분의 우의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뉴욕의 아시아 소사이어티, 워싱턴의 한국경제연구소(KEI), 뉴욕의 국제금융연구소(IIF), 워싱턴의 브루킹스연구소 등에서 강연을 했다. 아시아 소사이어티에서는 2004년 6월3일 ‘한국경제의 위기와 기회’라는 주제의 강연을 했는데 이날 참석자들의 질문은 한국이 보유외환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에 집중되어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이 많이 달라졌음을 실감했다. 그 때 한국의 보유외환이 2,000억 달러를 넘어서서 이것을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느냐에 따라 뉴욕금융시장이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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