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이 대통령의 독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부터였다고 한다. 케네디는 잠자기 전 30분 동안 꼭 책 한 권씩을 읽을 정도로 다독가이자 속독가였다. 1961년 시사 잡지 라이프에 케네디 대통령의 애독서 10선이 실렸다. 여기에 포함된 이언 플레밍의 소설 '007 시리즈'는 덕분에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사람들은 케네디의 독서목록을 통해 그의 취향과 전략을 읽고 화제로 삼았다. 이후 미국에서는 매년 여름 휴가철이면 대통령의 여름 휴가 가방에 들어가는 도서목록을 공개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 올 여름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37.8도나 되는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 골프를 쳤다는 뉴스에 가려서인지 그의 여름휴가 도서목록에 관한 소식이 감감하다. 지난 해에는 토머스 프리드먼의 등 5권의 책을 챙겨갔었다. 종종 지적 수준이 입방아에 올랐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어렵고 두꺼운 책을 여름휴가 중에 즐겨 읽었다. 2005년에는 등의 '심오한' 책들을 읽어 비판자들을 놀라게 했다.
■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의 휴가 독서 목록을 본격적으로 공개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부터다. 폭넓은 독서 편력을 자랑했던 그는 여름 휴가를 독서삼매에 빠져 보냈다. 대통령 휴양지였던 청남대를 거쳐간 5명의 전직 대통령 청동상 가운데 김 전 대통령의 동상은 책 읽는 모습이다. DJ가 쓴 책과 YS가 읽은 책의 수가 비슷할 것이라는 우스개가 있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도 '요약본'으로 효율적인 독서를 즐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독서 정치'를 한다는 말을 들을 만큼 책을 많이 읽었고, 감명 깊게 읽은 책의 저자를 발탁해 중용하기도 했다.
■ 휴가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종이책 대신 'e북'(전자책)을 가져갔다고 한다. 엊그제 "공직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늙은 젊은이"라고 일갈했던 그인 만큼 첨단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려는 것 같다. e북에는 '정의론'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베스트셀러 와 등이 들어 있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부드러운 설득의 리더십에 관한 를 휴가지에서 읽었다. 이미지 정치의 일환이겠지만 어쨌든 책 읽는 대통령은 믿음직스럽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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