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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황홀한 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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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황홀한 결별

입력
2010.08.0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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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샛노란 잎 한 장씩 내려 지붕의 반쪽을 덮고 나머지 반은 당신 가실 길에 깔아놓고 있는 은행나무를 향해 누가 바이올린 소리를 들려주면 좋겠어요 은행잎이 떨어지면서 긋는 음표의 곡선들을 모아 오선지에 오려 붙이며 당신을 생각했지요 가장 황홀할 때 결별하는 은행나무 밑에서 이 음악이 완성되면 어긋나는 우리의 운명도 아름다운 풍경이 될 것 같아서요

떡갈나무 잎 떨어져 날리는 동안 바람은 몸을 부벼 첼로의 낮은 음을 만들고 나는 그 소리에 내 비애의 키를 한 옥타브 내려 맞추었어요 내 슬픔은 비명소리보다 낮은 음에 더 잘 어울리거든요

오늘은 내 슬픔보다 더 많은 산벚나무 팽나무 갈참나무 작은 잎들이 결별하는 날 오후 내내 리끼다소나무 잎들이 금빛 실비를 지상에 뿌리며 흐느껴 우는 날 나는 비처럼 내리는 초독(楚毒)을 향해 은빛 금관악기를 불었어요 내 어깨 내 손등을 바늘 끝으로 찌르며 쏟아지는 아픈 모음들

그러나 나는 파멸보다 먼저 가을이 찾아오고 노을이 아직도 내 한쪽을 불태우고 있을 때 이 산의 나무들과 내게 이별이 찾아온 걸 고맙게 생각했어요 이렇게 서서 이별의 끝을 향해 걸어가는 그대를 향해 경배하는 오늘은 이 산의 모든 나무들이 나뭇잎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날

● 지금은 여름의 심장에 해당하는 시기를 지나는 듯. 고속도로는 휴가를 떠나거나, 휴가에서 돌아오는 차량들로 밤늦게까지 정체중이구요, 황해에서 생성된 구름들은 밤낮없이 동진하며 대기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국지성 소나기를 뿌립니다. 그럼에도 전국 모든 지역은 가만히 있어도 불쾌감을 느낀다는 폭염의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만히 서서 이마로 흐르는 땀을 느끼며, 그 땀이 흐르는 그 순간이 얼마나 짧은지 느끼며, 한편으로는 머지않아 그 땀이 그립게 되리라는 걸 생각합니다. 팔월이고, 지금 우리는 입추 지나 말복으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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