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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서민·상생 프레임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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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서민·상생 프레임의 명암

입력
2010.08.02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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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주의를 대표하는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가 올 여름 서점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고 한다. 친근한 사례 중심의 인기 강의를 책으로 옮긴 덕분에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귀에 쏙쏙 들어오게 잘 읽힌다는 게 강점이란다. 하지만 인문번역서가 베스트셀러 목록 1위에 오른 것은 2000년대 이후 유례를 찾기 힘든 일로, 출판계는 하나의 '문화적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과연 무엇이 독자층, 특히 20~30대와 여성의 호기심과 욕구를 자극했을까. 장동진(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과 이현우(서울대 노어노문학과 강사)가 한국일보 대담(7월 13일자)에서 정리한 메시지는 이렇다.

정당정치의 파당성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정의란 말이 우리사회의 결핍과 갈증을 채우는 말로 다가온 것 같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정착됐지만 공평한 기회는 되레 박탈 당했다는 불만과, 부패와 빈부격차 확대를 바로잡으려는 민주주의 내실화 욕구의 분출이다, 자유주의ㆍ시장원리ㆍ민주주의의 세 근간이 조화되는 정의로운 공동체 운영원칙을 모색하는 한국적 정서의 반영이다, 요컨대 사회구조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공동선을 지향하는 정치에 대한 시민적 각성이다….

이 즈음 진보학계의 원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자신의 저서 24쇄 출판과 시민강좌'정치철학 강의'개설을 계기로 우리 정치의 문제와 과제를 짚는 언론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비교정치학과 한국 민주주의론에서 시작한 지적 여정이 정치철학에 이른 배경을 "정치를 보는 우리 사회의 오해를 교정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최대 적은 정치의 부재라는 판단에서다.

그에게 정치는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길을 찾는 행위이며 그것은 결과까지 책임지는 사려 깊은 행위다. 가치와 이념이 난무하는 운동의 정치, 이상의 정치 대신 권력의 유지ㆍ강화를 정치의 출발점으로 삼는 마키아벨리즘을 다시 끄집어낸 이유다.

그런데 우리는 대통령이 되는 순간 정치를 멀리하고 역사와 소명을 찾는다. 얽히고 설킨 현실정치의 리얼함을 직시하고 다른 의견 다른 세력과 대화하고 타협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자 역할인데도 말이다. 그를 정치철학으로 이끈 문제의식 역시'어떻게 이성을 현명하게 사용하여 현실정치의 혼돈과 위험 속에서 가능의 공간을 발견하고 공공선을 현실적으로 실현하는 데 기여할 것인가'였다.

이명박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도는 시기에 정의의 전도사처럼 친서민ㆍ상생 드라이브를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 그 프레임이 왠지 낯설고 불편하다. 이 정부의 기본 이미지와 크게 달라서 그렇고, '보수 포퓰리즘'의 기치를 마다 않는 것도 더욱 그렇다. 하지만 열풍과 최 교수의 진단에 견줘보면 정치와 정책이 이런 트랙으로 가는 것은 시대적 요구다. 정부로선 몸에 잘 맞지 않는 옷이라는 생각이 들어도 몸을 줄이고 늘려서라도 맞춰가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럴수록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고, 의욕보다 기획ㆍ관리가 중요하다. 최근 정부와 재계가 주고받는 설전이 공허한 것은 이런 까닭이다. 정부가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기업간 복잡한 공생관계를 외면하고 선악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대면 일회성 이벤트로 그치기 십상이다. 중소기업계가 "상생이 대기업의 시혜로 흘러 불공정거래의 실상을 은폐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정부가 진정 의지가 있다면 백마디 말보다 대ㆍ중소기업 거래의 공정성을 재는 지표 하나만 제대로 개발해도 큰 효과를 볼 것이다.

친서민 3대 정책인 미소금융ㆍ보금자리주택ㆍ든든장학금이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하고 도처에서 삐걱대는 것도 속도와 의욕만 앞서고 치밀한 설계와 관리가 뒤따르지 못해서다. 정부가 정책 소비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보지 않고, 낡은 공급자의 프레임을 벗지 못했다는 뜻도 된다. 청와대가 정치와 정책 전반에 걸쳐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핵심코드를 어떻게 읽는지 여전히 궁금하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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