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데생이고 그 중심에 저 유명한 로마의 장군, 아그리파의 얼굴이 있다. 그는 카이사르가 죽자 젊은 시절부터 친했던 아우구스투스의 정계 진출을 도왔다. 위대하다(아우구스투스)는 칭호를 받은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눈부신 성공은 실상은 아그리파의 공이다. 특히 BC 36년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동맹군에 맞선 악티움 해전의 승리는 단연코 그의 승리였다.
빈자에 대한 가진 자의 사랑
그러나 데생 연습의 모델로 널리 알려진 아그리파의 우수에 젖어 있는 잘 생긴 얼굴에는 남모를 사연이 있다. 전쟁에서 이기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아내는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이를 눈치챈 아그리파가 고뇌에 찬 표정으로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그리파가 빈자에 대한 가진 자들의 사랑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는 로마 전성기를 누빈 불후의 명장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기부행위를 통해 로마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로마 시민들에게 소금과 올리브유를 나누어 주고, 모든 사람들의 머리를 깎아 주기 위해 이발사에게 대신 요금을 지불하고, 더럽혀진 로마의 하수도를 청소하는 등 가진 자의 의무를 다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수도, 공중 목욕장, 판테온 등을 신설하고 제국을 측량하고 지리서를 저작하여 세계지도 작성의 기초를 닦은 사람도 바로 아그리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그리파가 보여준 빈자에 대한 사랑은 요즈음 말로 치면 2% 부족하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부자들의 빈자에 대한 자선을 인간에 대한 사랑이 아닌 국가에 대한 봉사로 인식한 것처럼, 고대나 중세 시대의 실력자들이 보여준 빈자에 대한 사랑은 종종 세력 과시를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 같은 과거와 비교되는 것은 앤드루 카네기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부의 적절한 집행이다." 카네기는 1889년 에 처음 발표한 '부(Wealth)'라는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그는 "자식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겨주는 것은 독이나 저주를 남겨주는 것과 같다"며 은퇴 후 여생을 자선사업에 바쳤다.
카네기의 이 짧은 경구는 오늘날 빈자에 대한 부자들의 사랑, 이른바 박애 자본주의자들에게는 하나의 성스런 경전으로 받아들여진다. 천문학적인 돈을 주체하지 못하던 빌 게이츠가 감동적인 자본가로 변모하게 된 계기도 카네기 자서전이었다. 게이츠는 카네기로 인해 자신이 창조적 자본주의를 외칠 수 있었으며 거액을 주저없이 던질 수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인해 불평등이 확대되고 부자와 빈자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오늘날, 일찍이 앤드루 카네기가 지적한 부의 적절한 집행이 새로운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더구나 세계화와 시장주의가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 모두에게 이익을 남겨줄 것이라는 이른바 침투효과(trickle-down effect)를 믿어 왔던 사람들조차 날로 심각해져 가는 불평등에 불만이고, 세상은 승자독식의 시장주의와 맞물리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억만장자와 극빈자를 동시에 양산하는 시대로 변모하고 있다.
천민자본주의 모순 극복해야
이른바'비즈니스 프렌들리' 정권을 표방했던 이명박 정부가 잇달아 '대기업 때리기'에 나서자 재벌기업들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다"는 전경련의 비아냥처럼 반발 조짐도 있다. 그러나 재벌기업은 MB에 대한 서운함에 앞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들 재벌기업들의 이른바 기업가적인 성공 뒤에는 구조조정에 내몰린 '사오정'의 눈물과 고단함이, 알바에 목 매단 꽃다운'이태백'들의 좌절이 뒷받침하고 있음을. 비록 천민자본주의에서 시작했지만 한국 자본주의가 박애 자본주의(philanthrocapitalism)로 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동률 KDI 연구위원·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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