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스타일 머리띠에 맥시 드레스를 입고 방방 발을 구르는 아가씨, 웃통을 벗어젖힌 채 서툰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는 녹색 눈동자의 청년, 느긋이 나무그늘에 엎드려 맥주잔을 홀짝이는 연인들.
기온계 눈금은 30을 약간 웃돈 숫자에 멎어 있었지만 몸이 느끼는 열기는 족히 그 두 배는 되는 듯했다. 7월 30일부터 지난 1일까지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2010’이 열린 경기 이천시 해월리의 공기는, 젊음과 음악과 낭만이 섞인 열정으로 한껏 부풀어 있었다. 행사를 주최한 엠넷미디어가 밝힌 방문객수 는 국내 록 페스티벌 사상 최다 기록인 7만 9,000여명. 이들은 록을 공용어 삼아 푸른 숲 속에 사흘 간의 해방구를 건설했다.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국내외 44개 밴드(팀)가 ‘빅 탑 스테이지’와 ‘그린 스테이지’ 등 두 개의 무대에 올랐다. 헤드라이너(마지막 순서로 공연하는 간판 출연자)는 사흘 모두 세계 록 음악의 중심인 영국 밴드들이었다. 몽환적 사운드의 트립합을 선보이는 매시브어택, 신스팝ㆍ일렉트로닉 장르의 거장 펫샵보이즈, 세계 정상의 록밴드 뮤즈가 하루씩 넓은 잔디밭을 메운 록 팬을 전율케 했다.
페스티벌의 절정은 마지막 날 뮤즈의 무대였다. 리더 매튜 벨라미는 폭 40여m의 무대를 포디엄 삼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보였다. ‘Uprising’ ‘Resistance’ 등 히트곡을 연주하면서 그가 번쩍번쩍 주먹을 치켜들 때마다, 3만여 팬은 그의 악기가 된 듯 거대한 코러스로 화답했다.
둘째 날 무대에 오른 펫샵보이즈는 일렉트로닉 장르 또한 록 페스티벌의 대형 무대에서 무한한 매력을 뿜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월드컵 응원가로 사용돼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Go West’ 등 신스팝의 명곡들이 거대한 스피커에서 터져 나올 때마다, 잔디밭은 슬램(리듬을 따라 몸을 크게 흔드는 동작)의 물결로 출렁였다.
서정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코린 베일리 래는 역동적인 사운드를 휘감은 자신의 다른 색깔을 보여줬다. 아프리카풍의 독특한 록을 선보인 미국 밴드 뱀파이어위크엔드, 일본 밴드 히아투스 등도 팬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언니네이발관, 브로콜리너마저, 장기하와얼굴들 등 마니아층을 거느린 국내 인디 밴드들도 무대에 올라 록 팬과 교감했다.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은 지난해 시작하자마자 한국을 대표하는 록 페스티벌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여전히 미흡한 점을 노출하기도 했다. 라인업을 채운 아티스트의 수준과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 대중교통의 접근성 부족, 샤워장 등 편의시설 미비 등도 이 페스티벌이 세계적 음악 축제로 발돋움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지적됐다.
이천=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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