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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기대 앞선 '과거사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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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기대 앞선 '과거사 해결'

입력
2010.08.0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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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일본 도쿄(東京)의 호텔 오쿠라에서 한일 문화재 반환 논의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 군수물자 공급으로 돈을 번 오쿠라 재벌 창업자 오쿠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郞)가 당시 조선 총독을 움직여 가져간 오층석탑의 반환을 요구하는 자리였다. 경기 이천시 오층석탑환수위원회는 4월에도 석탑이 있는 오쿠라문화재단미술관 오쿠라슈코칸(集古館) 책임자를 만나 반환을 요청했지만 거절 당했다.

한국에서만 기대 부풀어

이날 협의를 앞두고는 분위기가 좀 달랐다. 환수위는"오쿠라 쪽에서 먼저 만나자고 했다"며 긍정적 답변을 얻을지 모른다고 적잖게 기대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협의 전날 오쿠라슈코칸 책임자를 만나 오층석탑 반환에 대해 물었다. "석탑을 돌려줄 생각은 전혀 없다. 반환 문제를 놓고 재단에서 논의한 적도 없다. 이천시 관계자를 만나는 것은 면담을 신청해서 응해주는 것뿐이다."

환수위는 이천 시민의 절반 이상이 서명한 요청서까지 전달했지만 반환은 역시 거절 당했다. 오쿠라 쪽은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는 데 반환 문제에 진전이 있을지 모른다는 근거 없는 기대가 한국 쪽에서 부풀었던 셈이다.

지난달 15일에는 일제 강점기 미쓰비시(三菱)중공업에 징용됐던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피해 보상에 이 회사가 응해줄 뜻을 내비쳤다는 기사가 국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한일 양국 시민단체가 힘을 모아 이 재벌기업에 보상을 요구한 건 10년이 넘었다. 법정 소송도 벌였지만 1965년 한일 협정의 '개인청구권 소멸' 조항 때문에 모두 기각됐다.

남은 것은 미쓰비시 스스로 보상에 나서는 것뿐이었는데, 그 문제를 논의할 장이 처음 마련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쓰비시 측이 일정한 사죄ㆍ보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지며 다른 일본 기업은 물론 전후 보상 전체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까지 쏟아졌다. 하지만 미쓰비시의 반응은 여전히 신중하다. "일본측 피해보상 지원단체의 요청이 있어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데 동의한다'고 답한 것뿐이고 무엇을 논의할지는 향후 정해갈 것"이라는 게 공보담당자의 대답이다.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과거사 문제가 해결의 전기를 맞을지 모른다는 기대에 한국이 일방적으로 부풀어 있는 모습은 이달 중 일본 총리 담화가 발표될 것이라는 국내언론 보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일본 관방장관과 외무장관 등이 한일병합 100년에 즈음해 정부의 견해 표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한 건 맞지만, 그 그것을 총리 담화라고 구체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의 지난달 30일 기자회견 답변을 보면 담화는커녕 매년 일본 총리가 참석하는 8월15일 전국전몰자추도식 식사에서 관련 내용을 언급하는 정도에 그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우리 민단 신문 관계자는 "한국 언론이 너무 앞서 간다"고 말했다.

현실 직시한 끈기 있는 요구를

일본이 불법으로 가져간 문화재의 반환이나 강제징용 피해보상은 당연히 요구해야 하고 또 실현돼야 한다. 한일 강제병합을 반성하고 새로운 한일 관계를 다짐하는 일본총리의 담화도 충분히 기대할 만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와 달리 이런 것들이 당장 실현될 것처럼 기대에 부풀었다가 제풀에 지치는 식이어서는 득 될 게 없다. 과거사 문제는 상대인 일본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 끈기 있게 요구하고 설득해서 풀어가야 한다.

김범수 도쿄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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