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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8월 미나리 꽃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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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8월 미나리 꽃 앞에서

입력
2010.08.0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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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해라. 지나치며 너를 무심히 보았다. 하얀 꽃이어서 개망초 꽃으로 알았다. 겨울부터 봄까지 미나리농사를 짓던 미나리꽝이었지만 그 위로 가득 핀 미나리 흰 꽃을 쉽게 알지 못했다. 미나리는 여름에 희고 작은 꽃이 핀다. 하늘의 태양은 8월의 시작으로 뜨겁게 쏟아지고 있는데 미나리 꽃이 이 더위에 단정한 앉음새로 앉아 소박하게 꽃을 피웠다.

지난 겨울 얼음 속에서 청청 푸른 몸과 그윽한 향기를 키웠던 미나리였으니 더위에 꽃 피우는 것이 무슨 힘든 일이겠는가. 여름 더위를 핑계로 좋은 시 한 편 쓰지 못하고 있는 한 마을 이웃에 사는 한심한 시인을 질타하듯 미나리 꽃이 피었다. 자신을 다 내주고 난 뒤에 피는 것들의 흰 꽃을 보면 눈물이 난다.

봄부터 여름까지 이파리를 내주고 가을에 피는 취 꽃이 하얗고, 정월부터 구월까지 자신을 다 주고도 시월이면 피는 전구지 꽃이 하얗다. 그 하얀 꽃들이 내 어머니 흰 머리 같다. 자식에게 좋은 것 다 내 주시고 검은 머리 흰 머리가 되신 어머니란 흰 꽃 닮았다. 미나리 꽃은 예로부터 민초들의 슬픈 꽃이었다. 대학시절 배운 ‘미나리 타령’이 있는데 ‘미나리야 미나리 꽃 너 홀로 피나./ 하이얀 미나리 꽃 눈물이 나네.’라는 첫 구절이 흥얼거려진다. 장마 끝난 8월이 찜통더위에 열대야일 것이라고 한다. 허나 은현리 미나리 꽃 앞에서 나는 덥다는 생각을 버린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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