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인터넷 루머로 자살한 女연예인 소재… 하재영 첫 장편소설 '스캔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인터넷 루머로 자살한 女연예인 소재… 하재영 첫 장편소설 '스캔들'

입력
2010.08.01 12:03
0 0

소설가 하재영(31)씨가 등단 4년 만에 첫 장편소설 (민음사 발행)을 펴냈다. 원고지 500매 남짓한 경장편 분량의 이 작품은 여성 연예인의 자살을 둘러싸고 양산되는 악소문이라는 시의성 있는 소재를 다루고 있어 우선 눈길을 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읽으면 악성 루머, 외모 지상주의, 허울 좋은 가족, 위선적인 인간 관계 등 본질과 무관한 부박한 것들이 인간을 쥐락펴락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냉혹한 해부도다.

서른 살 기혼녀이자 대필작가인 ‘나’는 7년 만에 만난 옛 남자친구와 정사를 나눈 모텔에서 여고 동창 신미아의 자살을 알리는 뉴스를 듣는다. ‘나’는 인터넷에서 죽은 미아에 대한 인신 공격과 억측이 난무하는 기사와 댓글을 찾아 읽는다. “언론과 네티즌은 미아의 삶과 죽음에 대해 다 안다는 듯 떠들었다. 하지만 결론은 아무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그녀의 죽음에 관해 내가 아는 사실은 둘뿐이다. 목을 맸다. 그리고 약 일주일 후 발견됐다.”(42쪽)

‘나’는 연예인이면서도 상황에 맞춰 연기하는 일에 서툴렀던 미아의 솔직한 성격이 그녀를 자살에 이르게 했을 거라 추정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광기 어린 루머에 비할 수 없는 차분한 판단인 듯싶지만, 죽은 자를 냉소하기로는 루머와 막상막하다. “솔직한 건 나쁘다고, 바로 그 솔직한 인간들 때문에 관계는 어려워지고 종국에는 모든 것이 엉망으로 헝클어진다고, 그러므로 솔직함은 미성숙의 동의어에 불과하다고.”(74쪽)

이후 소설은 그녀들이 단짝이었던 고교 시절을 보여준다. 미아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주던 ‘나’의 우정은 자신이 사모하던 음악 교사가 미아에게 애정이 있음을 알았을 때 맹렬한 질투로 변한다. 미아가 자신을 버린 남자 친구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나’에게 울며불며 고백한 이후 학교엔 ‘음악 교사가 미아를 임신시켰다’는 헛소문이 퍼진다. “나는 반에서 소문을 가장 늦게 들은 사람이었다. 다 아는 가십을 나만 모른다는 이유는 하나뿐일 것이다. 내가 바로 소문의 당사자이기 때문에.”(113쪽) 결국 소문의 두 주인공은 학교에서 쫓겨난다.

그런 악행을 저지르고도 인터넷 루머를 보고 ‘무섭다’고 중얼대는 주인공의 모습은 가증스럽다. 하지만 그 뻔뻔함이 바로 이 아수라도 세계에서 실족하지 않기 위한 규칙이다. 그러므로 젊은 날엔 가족을 모른 체하며 제 욕망에만 충실했다가 늘그막에 집안 어른 노릇을 하려 드는 아버지의 비위도 맞춰주고, 타고난 외모로 세상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오빠를 속으론 경멸하면서도 대외적으론 그럴싸한 우애를 보여주는 것이 주인공의 일상이다. 여기엔 ‘인간은 속물로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작가의 도저한 비관주의가 읽힌다.

하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발레를 시작, 대학 무용과에 진학했다가 졸업 후 문학으로 진로를 바꾼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무용을 하면서 실력 이상으로 외적인 요소가 뒷받침돼야 하는 현실을 겪으며 얻은 콤플렉스, 여중 여고 여대를 다니면서 여자들 특유의 내밀한 유대 관계를 깊이 경험한 것이 문학적 자양분이 된다”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