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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검은 파도의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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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검은 파도의 재난

입력
2010.08.0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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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고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지구 반대편에서 사상 최악의 원유 유출사고가 일어났다. 사고는 4월 20일 미국 루이지애나 주 해안에서 80㎞ 쯤 떨어진 멕시코 만 해상에서 발생했다. 수심 1,500m 해저를 굴착하던 영국의 세계적 에너지기업 BP의 심해 석유시추선 딥워터 호라이즌호가 폭발하면서 침몰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유정과 석유 시추시설의 연결 파이프에 구멍이 생기면서 원유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고 발생 86일 만에 가까스로 원유 유출을 일시적으로 차단하는데 성공했다. 사람이 직접 들어갈 수 없는 깊이라 무인잠수정을 이용해 차단 작업을 했다. 첨단 해양과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천안함 사건에서 보듯이 수심이 불과 몇 십 m 밖에 안 되더라도 바다 속 작업은 쉽지가 않다. 사고 후 100여 일이 흐른 지금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완전히 차단하지 못하여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일정한 량의 기름을 싣고 있는 유조선 사고와 달리 이번 멕시코만 사고는 유정에서 기름이 계속 흘러나와서 유출량도 많고 피해 범위도 넓었다. 유출량은 1989년 알래스카 만에서 발생한 엑슨 발데즈호 사고 때의 20배, 허베이 스피리트호 사고 때의 70배에 달하는 규모다.

바다로 유출된 기름은 생태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물보다 가벼운 기름은 해수면에 유막을 만들며 퍼져나간다. 그러면 대기 중의 산소가 바닷물로 잘 녹아 들어가지 못해 해양 생물의 호흡에 지장을 초래한다. 기름에 포함된 독성물질로 해양생물이 피해를 입기도 한다.

그나마 다행으로 이런 독성물질은 휘발성이 커서 며칠 지나면 대기 중으로 날아간다. 점성이 큰 기름이 포유동물이나 조류의 몸에 묻으면 방수성과 보온성이 떨어져 저체온으로 사망하게 된다. 1990년대 초 걸프 전쟁 당시 이라크의 해안 석유시설이 파괴되어 인근 바닷가에 살던 바닷새 약 5만 마리가 체온 저하로 죽은 일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름은 타르볼이라는 덩어리 형태로 되어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그러면 바닥에 사는 생물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사고로 기름이 유출되면 정말 속수무책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우선 흘러나온 기름이 널리 퍼지지 못하도록 오일펜스를 치고 흡착포로 기름을 빨아들인다. 허베이 스피리트호 사고 때 보았듯이 해안으로 기름이 밀려오면 걸레로 일일이 닦아내는 수밖에 없다. 유처리제를 뿌려 기름이 빨리 분해되도록 하거나, 뜨거운 물로 씻어내기도 한다. 또 기름을 태우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방제 활동이 오히려 생태계를 두 번 죽이는 경우도 있다.

유류 유출사고는 거의 모두 인간의 사소한 실수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실로 엄청나다. 검고 끈적끈적한 파도가 밀려오는 바닷가.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바다. 온몸에 시커먼 기름을 뒤집어쓰고 죽어가는 바다 생물들. 이렇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바닷가를 어느 누가 가려고 할까. 생태계가 다시 살아나려면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몇 십 년 세월이 지나야 한다. 그러니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어민들의 마음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엎질러진 우유를 보고 울어도 소용없다.'라는 영어 속담이 있다. 액체는 일단 쏟아지고 나면 다시 주워 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검은 파도의 재난은 미리 방지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김웅서 한국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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