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5기 들어 지자체들이 확 달라졌다. 그간 눈치만 보던 것에서 탈피해 중앙정부를 상대로 목청을 높이거나, 심지어는 대놓고 정책 수행에 반발하고 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수도권 규제 완화를 외치며 중앙과 대립하는 등 이전에도 광역 지자체들의 반발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양상이 다르다. 대립각을 세우는 중심이 기초 지자체들이고, 이런 변화를 경기도 기초지자체들이 선도하고 있다.
기초지자체의 반란
포문은 성남시가 열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난달 12일 "전 집행부가 판교신도시 특별회계에서 전용한 5,200억원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당장 갚을 수 없다" 며 채무 지불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했다. 지방정부가 중앙부처와 산하 공기업을 상대로 모라토리엄을 언급했다는 자체가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성남시는 여기에 지구지정이 끝난 고등지구 사업을 철회해 달라고 요구하는 등 현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추진 중인 보금자리주택에도 반기를 들었다.
광명시도 지구지정 때 목감천 홍수방지 대책이 고려되지 않았다며 보금자리주택 철회 주장에 동참했다. 양기대 시장은 지난달 27일 "시의 의견을 무시하고 추진한다면 중대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중앙정부에 경고했다. 안양시는 지난달 30일 국립수의과학검역원 부지 5만6,300여㎡ 매입을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지자체가 3년을 끌어온 중앙부처 산하 기관과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은 이례적이다. 최대호 시장은 "재정 여건 상 부지 매입에 필요한 1,293억원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밝혔지만 검역원 측은 계약 파기에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왜 경기도가 주축이 되나
6·2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기초단체장을 휩쓴 영향이 크지만 유독 경기도에서 기초단체의 반발이 불거지는 것은 도가 가진 특성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개발 여지가 별로 없는 서울과 달리 경기도는 택지개발과 보금자리주택 등 대규모 개발사업이 쉴 새 없이 진행 중이다. 만약 건축허가와 입주자 모집승인 등 각종 인·허가권을 쥔 기초지자체가 마음 먹으면 아무리 국책사업이라도 원활히 추진되기 어렵다.
여기에 인구가 적어 지방세 수입이 적은 지방과도 달리 경기도는 자체적인 사업 추진이 가능한 인구와 재정능력을 갖고 있다. 성남(96만여 명)이나 안양(61만여 명) 등 인구 50만명 이상인 대도시는 주택재개발이나 재건축 등 도시개발사업도 자체적으로 시행할 수 있고, 도시계획시설 등을 결정하는 막강한 도시관리계획권도 도지사가 아닌 시장이 쥐고 있다. 서울시와 광역시의 경우에는 이 권한이 구청장이 아니라 시장에게 있다. 때문에 도내 대도시들은 낭비만 하지 않으면 굳이 중앙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광역지자체인 경기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기초지자체의 요구사항들을 도가 수렴해 중앙에 건의하던 관행도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도발인가, 지방자치의 과정인가
경기도 내의 상당수 기초지자체들은 불합리하다면 중앙정부에 언제든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남시 관계자는 "지금까지 중앙과 지방은 명백한 상하 관계였지만 앞으로는 대등한 관계로 바뀌어야 한다" 며 "과거와 달리 할 말은 하는 것" 이라고 밝혔다.
한편에서는 지자체의 반발이 전 집행부와 선을 긋기 위한 포석이라는 시각도 있다. 새 지자체장이 취임 초기 전임자와의 차별화를 통한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중앙정부와 각을 세운다는 것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개인적인 의견을 전제로 "(지자체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중앙정부에 반하는 정책을) 성급하게 발표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해당 지역만이 아닌 국가 정책이란 큰 틀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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