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성 없다… 지역정서에 안 맞는다…
이미 4,000억원 넘게 투입한 경기 의정부경전철, 시운전까지 마친 7,000억원짜리 용인경전철, 경북도 최우수축제로 지정된 상주동화나라이야기축제…. 최근 들어 재검토하거나 취소된 사업들이다.
민선 5기 출범과 함께 새로 취임한 많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전임자의 역점 사업에 메스를 들었다. 예산 부족, 상황 변경, 실속 없는 소모성 행사 등이 이유다.
몇몇은 전임자의 잘못을 제대로 고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지만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척된 것에 손 대는 경우도 많다. 특히 취소가 아닌 재검토만으로 관련 기업과 지역 주민들에게 엄청난 경제적 손실과 불편을 초래할 수 있어 부작용이 크다. 일부 지역에서는 법적 대응 등 집단행동도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심판대 오른 민자 유치 사회간접자본(SOC)사업
의정부시는 안병용 시장 취임 직후 의정부경전철 시행사에 공사 중단을 요청한 데 이어 법률자문단 등으로 전담반을 구성해 경전철 실시협약 재협상에 나섰다. 사업 자체는 계속 추진하지만 개통 후 발생할 수 있는 시의 재정 부담과 도심 구간 지하화, 불합리한 운행 노선 등을 재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의정부경전철은 5,841억원을 들여 장암동에서 고산동까지 11.1㎞ 구간에 경전철을 건설하는 민자 유치 사업으로 2007년 이미 착공돼 2011년 8월 준공 예정이다. 준공 1년을 앞두고 뒤집기에 나선 것은 이용 승객이 당초 예상보다 크게 줄 것으로 보이고, 최소 수입 보장 조건에 따라 시가 연간 200억원 가까이 보전해 줘야 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행사는 시의 요구에 아랑곳없이 계속 공사 중이다.
용인경전철은 한술 더 떠 시운전까지 마쳤는데 재협상을 이유로 상업운전을 못하고 있는 경우다. 민자 4,281억원 등 7,278억원이나 투입했지만 신임 김학규 시장이 개통을 늦추고 있다.
2001년 민자 회사와 실시협약 당시 하루 이용객을 14만6,000명으로 예측했지만 지금은 4만∼5만명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 이유다. 협약에 따라 예측치의 90%(13만1,400명)를 밑돌면 차액을 보전해 줘야 하며, 이대로 개통하면 30년간 5,000억원 이상을 보전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 도민은 “두 사업들은 경제성과 타당성에 변화가 생겼다고 해도 이미 상당 부분 진척됐거나 끝났는데 이를 부분 보완이 아닌 전면 재검토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무산 위기에 처한 지역개발 프로젝트
각종 지역 개발 프로젝트도 잇따라 무산되고 있다. 이홍기 경남 거창군수는 전임자가 2018년까지 2,300억원을 들여 조성키로 한 승강기밸리조성사업을 지방비 부담 가중 등을 이유로 전면 재검토하고 나섰다. 문제는 승강기와 관련한 전문산업단지와 연구센터, 대학, 전문연구원, 전시장, 물류센터, 컨벤션센터 등을 조성키로 하고 이미 올해 3월 한국승강기대까지 문을 열었다는 점이다.
애물단지로 전락한 지역축제
성백영 경북 상주시장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도 최우수축제로 지정돼 2년간 도비 1억원을 지원받은 상주동화나라이야기축제를 “연 10억원 가까운 예산을 들였지만 소모성 행사에 그쳤고 지역 정서와 맞지 않았다”는 이유로 폐지키로 했다. 성 시장이 전임자의 역점 사업이라고 터무니 없이 폐지키로 했거나 도가 최우수축제를 졸속으로 지정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임광원 울진군수도 지역의 상징 행사인 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를 예산 대비 효용성이 낮다는 이유로 폐지했다. 하지만 유기농재배농과 관련 자재 생산 업자 등은 “시 예산 부담이 과장됐고 관광객 유치와 지역 브랜드 제고 등 무형의 가치도 컸는데 일방적으로 폐지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거세지는 주민 반발
유영록 경기 김포시장은 기존에 추진돼 온 김포경전철(지상)을 도시 미관을 위해 중전철(지하) 방식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그러나 오스타파라곤 입주예정자연합회가 들고 일어났다. 연합회는 “당초 경전철 역세권 개발 등을 이유로 고가(3.3㎡당 1,300여만원)에 분양받았는데 중전철로 변경됨에 따라 공기 지연 등으로 큰 손해를 보게 됐다”며 분양계약 해지를 요구했다. 이들은 시가 요구를 들어 주지 않으면 법적 대응 등 집단행동에 나설 태세다.
또 김학규 용인시장이 서정석 전 시장이 한국외국어대와 공동으로 추진해 온 용인영어마을조성사업을 “투자 실효성이 없다”며 재검토 입장을 밝히자 인근 KCC스위첸아파트 분양자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국책사업도 예외 아니다
경남도 충남도 강원도 광주시 등 야권 지자체장들은 국책사업인 4대강 사업에 직접 제동을 걸고 나섰다. 특히 김두관 지사는 도 시행 낙동강사업 13개 공구 중 5개 공구에 대해 착공 또는 발주 보류를 지시했다. 이에 다수당인 한나라당 소속 도의원들은 함안ㆍ합천보 관련 용역조사 예산 3억원 삭감으로 맞섰다.
충남도도 안희정 지사 지시에 따라 4대강사업재검토특별위원회와 금강살리기전문가포럼을 설치하는 등 본격 대응에 나섰다.
이 같은 전임 지자체장 흔적 지우기에 대해 감사원은 최근 “합리적 이유 없이 전임자의 시책이나 사업을 중단ㆍ변경하면 감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얼마나 먹혀 들지 미지수다.
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강주형기자 cubie@hk.co.kr
■ 단체장 바뀔때마다 정책 바뀐다면…
전임 지방자치단체장 추진 사업 뒤집기는 행정 불신과 예산 낭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시운전까지 마친 경기 용인경전철은 개통이 지연되면서 매일 수입이 사라져 버리고 있다. 이 때문에 시행사가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시는 시행사와의 실시협약 재협상을 위해 개통을 보류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 협상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잘못된 수요예측치에 근거해 실시협약을 한 것이 잘못이지만 지금에 와서 시가 재정 부담을 이유로 재협상을 요구한다고 해서 시행사이 선뜻 수용할지 미지수다.
경북도 최우수축제를 취소한 상주시도 당장 비용은 줄일 수 있지만 앞으로 다른 형태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축제 등 각종 사업 평가 때 불이익을 받아 지원이 줄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연구 자료를 통해 "지방자치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일관성 없이 사업이 크게 바뀌면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져 새로운 사업을 할 때 주민 지지와 동의를 구하기 어렵게 된다"며 "또 그동안 사업에 투자한 기업에 상당한 재정 손실을 초래할 수 있고, 지역 경제 상황을 악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철우(53) 경북대 사회과학대학장은 지자체장들이 지역민들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당선 사실 그 자체로 모든 것을 합리화해 버리는 것이 전임자 정책 뒤집기의 원인인 것으로 분석했다.
이 학장은"지역개발 사업이나 정책을 계획하고 수행할 때 지방의회 비정부기구(NGO) 공무원 지역민 등을 대상으로 사전에 충분한 의견을 수렴하고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후임자들에게 뒤집기의 명분을 준다"고 말했다.
반대로 상당수 지자체장들이 공약 사항이라며 뒤집기를 정당화하는데 이것도 정책 선거와 거리가 먼 한국 선거풍토상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학장은 해결책으로 "철저한사회적 합의, 유망 사업 추종보다는 해당 지자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업을 선택하는 발상의 전환, 맹목적 중앙정부 정책 추종 지양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