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발생한 제2조두순(김수철) 사건의 피해자 A(8)양은 지금도 TV 뉴스를 보지 않는다. 혹시라도 범인의 얼굴이 화면에 나올지 몰라 가족이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A양의 아버지는 "아이가 그 놈의 얼굴을 평생 보지 않고 상처가 아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사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미 공개된 김수철의 얼굴이 자료화면으로 등장할 것이 뻔해 A양 가족은 두렵다고 했다.
A양의 사례는 흉악범 얼굴 공개에 신중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를 말해준다. 범죄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의 인권뿐 아니라, 피해자와 그 가족이 입을 2차 피해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29일 여약사 납치강도살해 사건의 범인 얼굴과 실명을 공개했다. 국민의 알 권리 요구가 높고, 강도살인과 시신유기, 증거 인멸을 위한 방화 등 잔인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게 이유였다. 4월 개정된 특정강력범죄처벌특례법에 따르면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범죄를 저질렀다는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경우, 공공의 이익이 크다고 판단되면 얼굴과 실명을 공개할 수 있다.
하지만 동일한 흉악범죄인 동대문구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과 여자친구의 어머니를 살해한 중랑구의 인질극 사건의 범인들은 신원이나 얼굴이 공개되지 않았다. 경찰청은 내부규정상 범인의 얼굴 공개는 사건 지휘책임자인 경찰서장이 결정하도록 돼있다고 밝혔다. 경찰의 흉악범 얼굴 공개가 상황에 따라 다분히 자의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인정한 셈이다.
A양과 같은 피해자의 상황을 감안할 때 흉악범 얼굴공개는 보다 엄격하고 명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결정과정에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알 권리도 중요하지만, 그로 인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남상욱 사회부 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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