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지음ㆍ양윤옥 옮김
문학동네 발행ㆍ744쪽ㆍ1만5,800원
“아오마메가 죽기를 중단한 것은 먼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 울림 속에서 아오마메는 그리운 따스함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목소리는 아무래도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43쪽)
초등학생 시절 첫사랑이었던 덴고와의 재회를 갈구하면서도 그의 안전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아오마메가 덴고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살기로 결심하면서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61)의 기묘하고도 매혹적인 ‘1Q84년’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지난해 8월 국내에 번역 출간돼 지금까지 110만 부 넘게 팔린 하루키의 장편 제1, 2권을 잇는 작품이다. 일본어판 출간 3개월 만에 국내에 번역된 이번 책은 판매 개시 2주일 만에 초판 10만 부가 모두 판매됐다.
전편에서 폭력을 혐오하는 부잣집 노부인의 비호 아래 비밀 종교단체 ‘선구’의 교주를 살해하고 숨어 살던 아오마메는 도피처 부근 공원에 온 덴고를 발견한다. 덴고를 다시 만날 희망에 자살을 단념한 그녀는 선구 측의 추적을 피해 도피처를 옮기자는 노부인의 제안을 거절하고 창 너머 공원을 지켜보며 겨울을 보낸다. 덴고 역시 정신병을 앓는 아버지를 찾아간 요양소에서 소녀 시절 아오마메를 환상으로 본 뒤 늘 그녀를 마음에 품고 산다.
이들 두 사람의 시점에서 전편을 전개했던 하루키는 이번엔 선구의 사주로 교주 살해범 아오마메의 행적을 쫓는 우시카와까지 전면에 등장시켜 이야기의 긴장을 더한다. 명민한 두뇌와 추한 용모, 비틀린 심성을 지닌 이 전직 변호사는 아오마메와 덴고의 어릴 적 인연까지 파헤치며 그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러나 고난이 닥칠수록 덴고를 향한 아오마메의 사랑은 더욱 강해진다. 그녀가 고속도로 비상계단을 통해 1984년의 현실에서 비현실적인 1Q84년의 세계로 진입한 것은 누군가의 뜻에 휩쓸린 것만은 아니다. “분명 그런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나 스스로 이곳에 있기를 선택한 것이기도 하다.” 그녀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자명하다. “덴고를 만나 맺어지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세계에 존재하는 이유다. 아니, 거꾸로 보면 그것이 이 세계가 내 안에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다.”(585쪽)
아오마메의 사랑은 개인에게 가해지는 세계의 폭력, 그러니까 이 소설에 나오는 ‘리틀 피플’과 ‘공기 번데기’가 상징하는 것을 겨우 견디게끔 하는 심리적 방어기제가 아니다. 그 사랑은 세계의 질서를 제 뜻대로 재편하는 막강한 힘이다. 이를테면 아오야마가 덴고와의 성적 교접 없이도 세계의 협력, 심지어 그녀에게 목숨을 잃은 교주의 도움까지 얻어 덴고의 아기를 수태하는 기적을 일으키는 힘이다. 그것은 하루키가 출세작 (1987)에서 애잔하게 그렸던 무력한 사랑과는 대척에 있다. 아오마메 또한 남성적 판타지 속에 순응적 인물로 그려지곤 했던 하루키 소설 속 여성들과 전혀 다르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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