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역 인근 남산 쪽 언덕에 자리잡은 2층짜리 단촐한 단독주택은 누군가에겐 위험하나 누군가에겐 즐거운, 또 누군가에겐 새로운 지평을 기약하는 곳이다. 하루에도 몇 차례 열리는 세미나에서 성경과 함께 자크 라깡, 발터 벤야민 등의 사상가들이 거론되고 마르크스나 동성애 문제도 거리낌 없이 오르내린다. 신학과 인문학이 때로 경쟁하거나 길항하고 때로 서로 스며들면서, 삶과 신앙과 사유의 뿌리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되짚는 공간. 이 집에 붙여진 이름은 ‘연구공간 공명’이다.
‘청어람아카데미’ ‘카이로스’ ‘인문학과 성서를 사랑하는 모임(인성모)’ 등 개신교 관련 3개 단체가 연구실, 세미나, 토론 장소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난 6월 공동으로 마련한 이곳은 그러니까 기독교 지성운동의 새로운 아지트로 닻을 올렸다.
청어람아카데미는 기독인문강좌를 제공하는 대중교육기관이며 카이로스는 대학원생들 중심, 인성모는 교수나 강사를 중심으로 모인 연구단체다. 성격은 제 각각이지만, 기독교와 인문학적 사유를 결합해 기독교 담론의 지평을 넓히려는 의지는 다르지 않다. 세 단체는 지난 12일부터 16일까지 이곳에서 ‘공명 제1회 지식 수련회’도 열며 새로운 여름 수련회 모델도 제시했다. 교외에 나가 체험활동을 하는 대신 강의와 세미나로 꽉 채운 지성적 수련회인 셈인데, 강영안 서강대 철학과 교수의 ‘기독인문학’ 강연,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의 ‘법과 정의, 그리고 정치’ 강연 등을 비롯해 알랭 바디유의 , 톰 라이트의 등에 대한 세미나가 쉴새 없이 이어졌다. 기독교 신학과 철학, 법학, 정치학 등을 종횡무진 넘나든 이 수련회에는 100여명의 젊은 학생들이 참가했고 일주일간 진행된 세미나를 모두 참가한 이도 30명이 넘었다. 양희송(42) 청어람아카데미 대표는 “한국 개신교인들이 신앙에 대한 자기 이해가 많이 부족해 신앙과 삶, 지식이 서로 겉돌고 있다”며 “기독교 신앙을 지성적으로 성찰하면서 한국 개신교의 다음 세대를 길러내려는 노력이다”고 말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기독교 지성운동의 새로운 구심점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곳은 교인이 아니더라도 서양 문화의 뿌리인 기독교 사상과 인문학의 만남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열려 있다. 수련회는 끝났지만 카이로스가 진행하는 세미나는 다양한 주제로 계속되고 있는데, 참가 신청(회비 1만원)을 하면 누구나 책을 읽고 토론에 참여할 수 있다. 현재 라깡, 벤야민, 문예비평, 중세철학, 성서학, 정치철학 등에 대한 세미나가 진행 중이다. 카이로스의 회원 김강기명(30)씨는 “세미나는 정해진 답을 찾거나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질문을 던지며 서로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참여자의 수준은 중요하지 않다”며 “공부하는 열의가 있다면 앎의 성숙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지식권력화한 신학을 평신도 모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신학도. 그에게 신학은 정답을 가르쳐 주는 곳이 아니라, 불확실한 삶 속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하는 학문이다. 그는 ‘공명’이 바로 그렇게 질문하고 공부하면서 그것을 기꺼이 즐거워하는 이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말했다.
글ㆍ사진=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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