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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로댕, 돌의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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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로댕, 돌의 속삭임

입력
2010.07.2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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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면 자신의 생에 영향을 미친 어떤 계기나 경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책 한 권이 인생의 길을 잡아줄 수 있다. 또 누군가의 연주를 듣거나 영화 한 편, 그림 한 장을 보고 예술의 세계로 이끌리기도 한다.

나는 열렬한 예술 애호가는 아니지만, 예술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나의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인 것은 사실이다. 내가 예술의 세계에 이끌리던 순간들은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생생하다. 첫 번째 기억은 중학교 때 학생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던 기억이다. 1954년, 휴전 다음해에 중학교에 입학한 우리는 폭격 당한 교사의 잔해가 그대로 남아있는 교정에서 선배들의 연주를 들으며 음악에 눈을 떴다. 그 날의 싱싱한 현악기 소리를 잊을 수 없다.

예술에 이끌리는 뜻 깊은 만남

다음 기억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오페라 를 보던 일이다. 난생 처음 보는 오페라인데다 우리학교 음악선생님인 김옥자 이우근 오현명 선생님 등이 모두 주연으로 출연하셔서 학생들의 관심이 대단했다. 우리는 음악시간마다 선생님께 졸라서 의 아리아들을 배우기도 했다. 그 영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나는 지금까지 이 오페라를 수없이 보았고, 아무리 여러 번 봐도 싫증나지 않는다.

또 하나의 기억은 1970년대 초 파리에서 ‘로댕의 집’에 갔을 때의 충격이다. 그 때 나는 30대 초반이었는데, 처음 간 파리에서 다리가 아프도록 책에서만 읽던 문화예술의 명소들을 누비고 다녔다. 박물관 미술관을 순례하며 그 엄청난 소장품에 놀랐고, 뛰어난 작가들을 가진 프랑스와 프랑스 인들을 한없이 부러워했다. 열병에 걸린 듯 나를 문화와 예술에 취하게 했던 40년 전의 파리가 눈에 선하다.

특히 로댕의 집은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 때까지 내가 알던 조각이란 그저 아름답거나 웅장하거나 영웅적인 것들이었다. 로댕의 집에는 그 이상의 것이 있었다. 나는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소리’를 들었다. 돌과 청동의 맥박, 속삭임, 흐느낌, 고통, 울부짖음, 사랑과 증오 등이 생생하게 전달됐다. 왜 그의 손을 ‘신의 손’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로댕은 돌을 속삭이게 하고, 흐느끼게 하고, 울부짖게 하고, 고뇌하게 하는 손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후 나는 파리에 가면 반드시 로댕의 집에 가곤 했다. 수없이 오페라 를 보았듯이 나는 로댕의 작품들을 여러 번 보았다. 처음 갔을 때 구입한 복제품 ‘신의 손’과 ‘입맞춤’은 40여 년 간 우리 집 거실에 놓여있다.

로댕의 비극적인 연인 카미유 클로델 때문에 더 마음이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21살 때 제자 겸 조수로 로댕에게 가서 불 같은 사랑을 나누고. 그와 헤어져 증오하고, 작품에 온 힘을 쏟았으나 좌절하고, 자신의 작품들을 망치로 부숴버리고,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80세까지 길고 고통스런 삶을 살았던 카미유 클로델…, 살았을 때 ‘로댕의 아류’ 란 평가로 분노했던 그는 죽어서야 ‘로댕 못지않은 천재작가’라는 평가를 되찾았다.

지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로댕 전시회에는 그의 대표작들과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로댕이 만든 클로델, 클로델이 만든 로댕의 얼굴도 있다.

많은 사람이 로댕과 만나기를

방학을 맞은 많은 학생들이 로댕의 조각들을 감상하고 있다. 그들도 돌의 소리, 청동의 소리를 듣고 있을까. 그 소리를 거슬러 올라가 로댕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듣고 있을까. 그리고 오늘 로댕과의 만남이 학생들의 마음에 예술을 사랑하는 밀알로 심어져 풍성한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은 한평생의 큰 자산이다. 또 우리가 서울에서 샤갈, 피카소, 마티스, 반 고흐, 로댕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기도 하다. 8월 말까지 계속되는 로댕 전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뜻 깊은 만남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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