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재계가 점점 소원해지고 있다.
대ㆍ중소기업 상생을 이슈로 청와대와 정부 안팎에서 대기업을 향한 쓴 소리가 연일 터져 나오자 꾹 참고 있던 재계가 28일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내세워 “정부와 정치권이 먼저 중심을 잡으라”며 정부를 비판했다. 하지만 다음날 이명박 대통령에게 “대기업만 옹호하지 말라”는 면박만 들은 것이다.
역대 어떤 정권 때보다도 가까운 사이였던 둘 사이가 갑작스레 멀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대중소기업 상생을 위해) 한 게 뭐 있느냐”는 정부와 “할 만큼 했다”는 재계의 인식 차이가 주요한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다.
청와대, 정부 내 분위기는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위한 대기업의 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상생을 위해 애를 쓴다지만 대부분 대기업 계열사이거나 중견기업 이상 되는 1차 협력업체 얘기”라며 “2~4차 협력업체 등 우리 경제의 밑바닥을 떠받치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은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규제 개혁, 세제 지원 등을 통해 정부는 대기업들이 경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왔고 이제는 대기업들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통해 그 도움을 되갚을 때”라며 “상당수 대기업들이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는 것은 혼자만 잘 해서 얻은 게 아니다”고 꼬집었다.
반면 재계는 청와대와 정부의 대기업 비판에 대해 “매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이 이익을 독차지한 채 협력업체 등 중소기업들 사정은 나몰라라 한다는 게 비판의 요지”라며 “하지만 투자, 고용 등 모든 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게 재계 분위기”라고 말했다.
2008년 미국 발 금융 위기에서 비롯한 경제 위기 속에서도 잡 셰어링(일자리 나누기) 등 정부의 계획에 충실히 따라왔고, 협력업체들과도 기술 교류 등 상생을 위해 꾸준히 애쓰고 있는데도 정부는 이런 노력은 평가해주지 않고 대기업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것.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그 어느 정권보다도 기업을 위해 노력하겠다던 정부가, 오히려 그 어느 정권보다도 강하게 공격하고 있다는 점에 당황스러울 뿐”이라며 “자칫 기업 활동 자체가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서민들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청와대, 정부의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재계의 시각 차이는 당분간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한결 같은 반응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투자, 고용은 쉽게 결정하고 집행할 수 없는 만큼 정부가 기업들에게 맡기고 일단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기업도 사회적 책임, 중소기업과 상생 협력의 중요성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며 “정부의 채찍이 무서워가 아니라 스스로 필요에 의해서 움직여야 실질적이고 오래 이어질 수 있는 대책과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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