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코미디언 백남봉(본명 박두식)씨가 29일 오전 8시 40분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폐암 합병증으로 별세했다. 향년 71세.
고인은 2008년 늑막염 수술을 받던 중 암세포가 발견돼 경기 광주시의 한 요양시설에서 투병생활을 해오다 최근 폐렴 증세가 악화돼 삼성서울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1939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난 고인은 일곱 살 되던 해 집안이 평남 진남포(현 남포시)로 옮겨가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1950년 6ㆍ25전쟁 중 월남하다 가족을 잃었다. 이후 고아원에서 살다가 날품팔이, 구두닦이, 장돌뱅이 생활을 전전하며 방방곡곡을 떠돌았다. 그의 장기인 구수한 팔도 사투리는 일부러 익힌 재주가 아니었다.
고인은 1967년 서울 물랭루즈쇼 단원이 되면서 코미디 인생을 시작했다. 1969년엔 TBC 라디오 ‘장기자랑’ 프로그램으로 방송에 데뷔해 맛깔스러운 사투리와 구수한 입담, 주정뱅이 연기 등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뱃고동, 말발굽, 탈곡기 소리 등의 성대모사는 신기에 가까웠다. 김병조, 심형래, 이홍렬 등 후배들은 그의 LP를 틀어놓고 연습을 했을 정도였다.
그의 전성기인 1970~80년대 코미디는 여러 명이 각본에 따라 함께 연기하는 콩트가 대세였다. 하지만 고인은 오늘날과 같은 스탠딩 코미디를 선보이며‘원맨쇼의 달인’으로 불렸다. 후배 개그맨 이봉원씨는 “선배님은 코미디언이라기보다 개그맨에 가까웠다. 20~30분을 개인기만으로 끌고 가는 것은 지금 후배들도 따라 하기 힘든 능력”이라고 말했다.
1970년 영화 ‘팔도 사나이’에 출연했고 숱한 쇼와 방송 무대에 섰다. 폐암 진단을 받기 직전까지 TV와 라디오 진행자로 왕성히 활동했다. 일찍 부모를 여읜 그는 30여 년 동안 크고 작은 효도잔치의 사회를 도맡으며 어르신들을 즐겁게 했다. 이런 공로로 2000년 한국연예인협회가 주관하는 대한민국연예예술상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빈소엔 29일 하루 종일 동료와 후배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40년 동안 고인과 최고의 콤비를 이뤘던 코미디언 남보원(74)씨는 “그 친구는 ‘웃음의 배달부’로 평생 남들에게 웃음을 주다가 갔다. 저 세상에서 잘 쉬었으면 한다”고 고인을 기렸다. 부인 이순옥씨와 피겨스케이팅 선수 출신으로 리포터로 활동 중인 딸 윤희씨가 빈소를 지켰다. 발인은 31일 오전 6시, 장지는 경기 성남시 분당메모리얼파크. (02)3410-3151.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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