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생포에서 토막토막 난 고래고기 뭉치들을 보았을 때 어릴 적에 보았던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마지막 장면이 왜 생각났을까. 주인공 알랑 드롱이 살해한 시체가 요트의 끝에 매달려 바다에서 떠오르는 그 장면이었다. 영화의 주제곡이 내 귓가로 격정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죽은 고래는 밍크고래였다. 그 전날까지 자유롭게 유영하던 고래바다의 주인이었다. 고래바다의 살아있던 꿈이었다. 그 고래를 잔인하게 불법 포획한 사람은 장생포 주민들이었다. 그들은 고래바다에서 고래를 잡아 죽이고 바다에서 해체를 해서 220자루에 담아 장생포로 반입하려다 울산해경에 발각됐다. 범인은 도주하고 고래고기는 증거물로 장생포 길바닥에 펼쳐졌다. 죽은 고래 가까이에 고래박물관이 있고, 고래연구소가 있고, 돌고래들이 헤엄치는 고래생태체험관이 있다. 그 뒤로는 고래를 보고 싶어하는 관광객을 태우고 바다로 나가는 고래바다여행선이 정박해 있고, 장생포를 무대로 한 아름다운 영화 ‘고래를 찾는 자전거’는 이미 크랭크인 되었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 찾아가는 고래의 푸른 꿈인데, 그 꿈 위로 고래는 토막 나 붉은 핏덩이로 널려 있었다. 몸이 떨렸다. 분노가 솟구쳤다. 도망간 2명의 범인 가운데 한 명은 장생포고래상인연합회 회장을 지냈다고 한다. 발각되지 않았다면? 그 전에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면? 그 답을 장생포에 묻는다.
시인ㆍ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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