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 다니는 일곱 살 배기 주희의 엄마는 복강경수술이라는 말을 들으면 예전 일이 떠올라 웃음 짓곤 한다. 5년 전 어느 날, 생후 20개월에 접어든 주희가 갑자기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콩팥 주변 혈관이 좁아져 혈압이 높아진 것이 원인이었다.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에 주희 엄마는 고민에 빠졌다. 어린 딸의 몸에 칼을 댄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망설이는 주희 엄마에게 주치의는 흉터를 최소화하는 복강경수술을 권유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뿐만 아니라, 흉터도 거의 남지 않았다.
어른보다 더 어려운 어린이 복강경수술
복강경 수술은 배를 여는 대신 환자 배에 작은 구멍을 뚫은 뒤 카메라와 수술기구를 넣고 모니터를 보면서 수술하는 방법이다. 전통적인 외과수술과 달리 흉터가 거의 남지 않고, 회복기간도 빨라 환자들이 크게 선호한다.
하지만 어른과 달리 어린이를 복강경으로 수술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린이는 몸집이 어른의 10분의 1에 불과한데다가 면역력이 떨어져, 완전히 성장하지 않은 장기는 복강경으로 수술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어린이수술은 종류는 어른수술만큼 많지만 해당 질환을 가진 어린이는 적어, 경험 많은 의사조차 어린이 복강경수술에 숙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 때문에 국내에는 숙달된 어린이 복강경수술 전문의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이의 경우 복강경수술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은 어른보다 더 크다. 김건석 소아비뇨기과 교수는 “어린 시절에 얻은 흉터는 성장하면서 깊고 넓어지는 경향이 있어, 청소년기에 심리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평생 짐이 된다”며 “복강경수술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좋은 치료법”이라고 말했다.
난치성 어린이 암까지도 복강경으로 수술
어린이 복강경수술은 1990년대 초 유럽과 미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국내에서는 90년대 중반에야 도입됐다. 이후 지름 3㎜ 크기의 가는 관이 개발되면서 복강경으로 수술할 수 있는 어린이질환도 다양해졌다.
특히 서울아산병원은 다양한 어린이질환에 복강경수술을 시도하고 있다. 실제로 어린이에게 급성 복통을 일으키는 충수절제술(맹장염 수술), 장 운동을 못해 음식을 먹으면 대장이 크게 늘어나는 선천성 거대결장증, 고환이 음낭까지 완전히 내려오지 못하고 복강 안에 멈춰버린 잠복고환, 횡경막 탈장, 식도 폐쇄, 위장 협착 등을 복강경수술로 치료하고 있다.
2009년 한 해 60여건의 맹장염 수술을 비롯, 170건이 넘는 어린이수술을 복강경으로 진행했으며, 어린이 잠복고환도 복강경으로 90여건 수술하는 등 국내에서 어린이 복강경수술을 가장 많이 시행하고 있다.
임상 경험이 쌓이면서 예전에는 선뜻 시행하지 못했던 분야까지 복강경수술이 폭 넓게 적용되고 있다. 특히 눈부시게 발전하는 분야가 신생아와 영유아의 복강경수술이다. 김대연 소아외과 교수는 “신생아는 복벽이 얇고, 복강 내 장기가 압력에 약해 수술을 위한 복압조절이 쉽지 않다”며 “수술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선천성 횡경막탈장 복원과 부신 절제, 장 천공(穿孔) 봉합 등 고난도 수술까지 복강경 수술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최근 신경아세포종, 간암세포종과 같은 난치성 어린이 암 치료에도 복강경이 쓰이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에서는 2008년 김대연 소아외과 교수가 복강경으로 신생아 부신에 발생한 신경아세포종을 치료한 데 이어, 같은 해 국내 최초로 어린이의 간암 절제에 성공하는 등 악성 종양까지 복강경수술로 제거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앞서, 2003년에는 김건석 소아비뇨기과 교수가 세계 최초로 방사선투시법을 이용한 복강경수술로 이소성 콩팥을 쉽게 파악하고 치료와 수술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콩팥은 복막 뒤쪽에 있어 복강 뒤로 접근해 수술하는 게 더 좋다. 하지만 위축되고 정상 위치에 있지 않은 콩팥(이소성 콩팥)을 찾기가 쉽지 않아 웬만한 숙련의가 아니면 시도하기가 어렵다.
최근에는 충수절제술과 담낭절제술에 배꼽 한 곳의 피부만 절개해 수술하는 단일 절개 복강경수술을 시행하면서 환자 만족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어린이 질환, 조기 발견과 빠른 치료가 관건
어린이 외과질환은 예방이 쉽지 않아 조기에 발견해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 대표적인 어린이 외과질환은 음낭수종이나 탈장이다. 음낭이나 샅 부위가 불룩해지는 증상이 나타나므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기저귀를 갈면서 한번씩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김대연 소아외과 교수는 “어린이에게 흔한 탈장은 인터넷의 잘못된 정보를 믿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더 큰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이상을 발견하면 전문의에게 빨리 진료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잠복고환도 부모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발견할 수 있다. 김건석 소아비뇨기과 교수는 “고환이 만져지지 않는 잠복고환은 1세 남아의 1%가 해당될 정도로 흔하다”며 “일시적으로 음낭이 올라갈 수 있으므로 여러 차례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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