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f(x)의 멤버 빅토리아는 MBC ‘우리 결혼했어요’와 KBS ‘청춘불패’에 출연한다. 두 프로그램에서 그의 모습은 다르다. ‘청춘불패’에서 빅토리아는 언제나 밝다. 일을 할 때도 식물에게 말을 걸며 애교를 부린다. 반면 ‘우리 결혼했어요’에서는 가상 남편 닉쿤의 태도에 실망하면 약간 화를 내기도 한다. 이 차이는 두 프로그램의 방향에서 비롯된다.
‘우리 결혼했어요’에서는 연예인인 남녀가 가상 결혼을 통해 일상을 경험한다. 그만큼 감정을 어느 정도 드러낼 수 있다. 반면 ‘청춘불패’에서 걸그룹 멤버들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줘야 한다. 마을 농사일을 돕고, 군부대 위문 공연도 한다. 그들은 언제나 웃고 누군가 원하면 곧바로 장기자랑을 펼친다. 때론 ‘생얼’을 공개하며 망가지기도 한다. 그들이 자신의 성격을 보여주는 건 제작진이 따로 진지해질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줄 때뿐이다.
‘청춘불패’는 많은 오락 프로그램들이 걸그룹을 다루는 방식을 보여준다. 스스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걸그룹은 언제나 대중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준비된 것처럼 보인다. 진행자가 어떤 요구를 해도 거절하지 못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웃는다. 대중은 그런 걸그룹의 밝은 판타지를 소비한다. 나쁠 건 없다. ‘청춘불패’처럼 세상 시름 잊게 만드는 프로그램은 필요하다.
하지만 MBC ‘세바퀴’에서 포미닛의 현아에게 섹시댄스를 추라고 한 건 어떤가. 이 방송이 논란이 된 건 기본적으로 미성년자가 섹시댄스를 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춤이라도 무대 위에서 추는 것과 맥락도 없이 진행자의 요구에 따라 섹시한 춤을 춰 보이는 건 다르다. 걸그룹이 즐거움을 위해 존재해도, 아무 때나 섹시댄스를 뽑아낼 수 있는 자판기는 아니다. 게다가 MC 김구라를 비롯한 남성 출연자들이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대목은 보는 사람이 다 민망하다.
SBS ‘스타킹’에선 f(x)의 루나가 노래를 부른 뒤 곧바로 게스트인 필리핀 가수 채리스 펨핀코에게 같은 노래를 부르게 했다. 이 때 루나가 눈물을 흘려, 그 의미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본인이 “펨핀코 노래에 감동해서”라고 해명했지만, 가창력 대결로 몰아간 상황이 어린 가수에게는 가혹했다는 비판이 따랐다.
인기를 얻으려면 이런 것쯤 감수해야 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어떤 상황에서든 기계처럼 웃으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판박이처럼 언제나 웃고 시키는 대로 개인기를 보여주는 식이라면 걸그룹들간 차별성이 생길 리도 없다. 걸그룹 붐이 지속되려면 기획사에서 정한 콘셉트나 웃는 로봇 같은 고정된 이미지에만 가두지 말고 멤버들 각자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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