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미래기획위원회는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초등학교 취학을 1년 앞당기는 만5세 취학안을 제시했다. 이 제안은 관련 전문가들의 반대로 철회되었다고 생각했으나 최근 초등학교 빈 교실 현황을 조사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빈 교실에 만 5세 아동을 수용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일면서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의 증설 즉, 유치원 공립화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많이 생기면, 공립유치원 교사가 되기 위해 몇 년씩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제자들을 둔 교수로서 매우 기쁜 일이다. 또한 유아교육의 공교육화라는 유아교육계의 숙원이 해결된다는 측면에서 고맙기까지 하다.
그러나 유치원의 공립화는 문제가 없는가. 일단 엄청난 예산이 소요될 것이다. 어중간하게라도 만5세 아동에 맞게 초등학교 빈 교실을 고치자면 그야말로 돈 먹는 하마가 될 것이다. 또 교사 인건비 증가에 따라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려는 만5세 조기취학은 더 큰 세금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현재 중ㆍ고등학교 교육예산의 70%이상이 교사 봉급이다. 공ㆍ사립 모두 국가와 지자체가 부담하는 교사 인건비 등의 경상지출은 한번 시작되면 중단하기 어려운 속성이 있다. 따라서 제한된 재정을 인건비로 다 지출하고 나면, 실제로 아이들을 위해 꼭 필요한 곳에 투자 할 돈이 없는 경우가 많다.
만5세 조기 취학안은 초등교원 수급정책 실패에 사립 유치원을 끌어들이는 ‘물타기 작전’으로 유아교육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초등교육과 유아교육은 비록 연계를 가져야 하지만, 접근 방법과 발달적 특성이 아주 다르다. 만5세 취학안으로 사교육비 경감을 꾀하는 것은 초ㆍ중ㆍ고 사교육비 과잉지출의 총체적 문제를 본질적으로 들여다 보기 보다는 교육 포퓰리즘에 치우친 듯한 느낌이다. 만 5세아는 제대로 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장하고 배울 수 있다.
유아기 교육은 그 특성상 공립화가 필수적이라기보다는 공ㆍ사립 기관 모두 공적 기능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쟁력 있는 민간기관을 활용해 그 기능을 수행하게 하는 것이 바로 국가가 미래지향적으로 추구해야 할 역할이다. 공립교육이 곧 공교육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기관을 공립화한다는 것은 자칫 사회주의적 발상이 될 수 있다. 그러한 발상에 기초한 옛 사회주의 국가들의 실패를 우리는 목격하지 않았는가.
우리나라 유치원은 시설과 교육과정에서 유럽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선진국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앞서가는 부분도 있어 뿌듯함을 느낄 때가 많다. 우리가 부족한 것은 세계 어디라도 가서 배워오는 열정이 있는 곳이 바로 유치원 교육 현장이다. 우리나라 유치원 교육 시스템은 내용적으로 견실하다. 그런데 왜 만 5세아를 열악한 초등학교 교실에 몰아넣고, 잘 갖춰진 유아교육 인프라를 사장시킨단 말인가.
공립 유치원뿐 아니라 사립 유치원도 우리 땅에 있는 국가의 재산이며 국민의 자산이다. 사립 유치원의 노하우와 공립 유치원의 시스템이 조화롭게 협력하면서 경쟁한다면, 우리나라의 유아교육 시스템과 프로그램ㆍ시설 인프라를 보기 위해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찾게 할 수 있다.
초등학교 빈 교실을 만 5세아로 채우는 안을 철회하고, 이미 상당부분 진척된 만 5세아 무상교육비 지원을 완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가장 돈이 적게 들면서도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좋은 방안이다.
신혜영 부산여대 유아교육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