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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소프트시티를 가다] (9) 리버풀-폐쇄됐던 항구도시가 유럽문화수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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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소프트시티를 가다] (9) 리버풀-폐쇄됐던 항구도시가 유럽문화수도로

입력
2010.07.28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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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와 축구의 도시 리버풀은 대영제국 시대를 대표하는 상업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있다. 영국 중서부, 머지강을 끼고 있는 항구도시 리버풀은 18세기 노예무역으로 번성한 이후 세계적 무역항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구조의 변화로 침체를 거듭해 1970, 80년대에는 가난과 실업의 대명사로 전락했다. 사회불안이 극에 달했던 1981년에는 인종 갈등이 불씨가 되어 폭동까지 일어났다. 하지만 30년이 흐른 지금, 리버풀은 활기가 넘친다. 도시가 지닌 풍부한 역사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문화의 기운을 불어넣어 도시를 새롭게 디자인한 결과, 몰락한 항구 도시에서 젊은 문화 도시로 재탄생한 것이다.

문화 중심지로 변신한 앨버트독

리버풀 부활의 중심에는 폐쇄됐던 항구 앨버트독이 있다. 1846년 건립돼 리버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앨버트독은 1972년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고 말았다. 하지만 1988년 도시 재생의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재개장한 앨버트독은 매년 4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대표적인 문화 명소로 탈바꿈했다. 설탕과 담배 등 무역품들을 보관했던 거대한 창고 건물에는 세계적 미술관인 테이트 리버풀을 비롯해 리버풀이 낳은 최고 스타 비틀스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비틀스 스토리, 항구도시 리버풀의 역사를 증언하는 머지사이드 해양박물관과 국제노예박물관 등이 들어앉았다. 자연히 레스토랑과 카페, 상점 등 부대 시설들도 따라왔다.

물론 문화시설로 용도만 바뀌었다고 해서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든 것은 아니었다. 크리스토퍼 그루넨버그 테이트 리버풀 관장은 “역사적 공간에서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의미가 있지만, 건물 자체보다는 그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컬렉션을 보유한 테이트 리버풀은 시인이나 화가를 큐레이터로 참여시키는 등 실험적인 전시 방식으로 외부 지역 관람객들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작가와 지역 주민의 협업,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지역과의 유대를 탄탄히 하고 있다. 현재 열리고 있는 피카소전의 경우 피카소의 작품에 대한 지역 초등학생들의 반응을 소재로 삼은 네덜란드 작가 리네케 딕스트라의 영상 작업이 함께 전시되고 있다.

비틀스 스토리 역시 과거의 추억만을 내세우지 않는다. 어린이들을 위한 3D 영상 프로그램, 음반과 티셔츠 등 각종 기념품을 파는 ‘Fab4 스토어’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한다. 비틀스의 무명시절 활동 무대였던 캐번 클럽과 멤버들이 살았던 집 등을 도는 비틀스 투어 역시 이곳에서 출발한다.

도시와 하나되는 비엔날레

리버풀에 문화 도시라는 이미지를 입힌 공신으로 리버풀 비엔날레를 빼놓을 수 없다. 2000년 영국 유일의 국제 현대미술 비엔날레로 출발한 리버풀 비엔날레는 미술 전시를 넘어 도시 재생과 긴밀하게 연관된 행사다. 메인 전시장을 별도로 두지 않고 도시 곳곳에서 분산 개최하고, 작가들에게 리버풀을 주제로 한 작품을 따로 위촉하는 등 리버풀의 사회,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08년 참여했던 한국 조각가 최우람씨의 경우 앨버트독에 사는 가상의 해양생물체를 만들었고, 존 레논의 부인인 오노 요코는 ‘리버풀 하늘 사다리’라는 제목으로 폐허가 된 교회에 사다리를 놓았다. 테이트 리버풀을 비롯해 133년의 역사를 가진 워커아트갤러리, 미디어아트 미술관인 팩트 등 다양한 미술 관련 기관들이 협력해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낙후된 지역에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하는 것 역시 비엔날레의 중요한 부분이다. 영국 작가 리처드 윌슨은 비어있는 와인 창고의 외벽을 둥글게 도려낸 뒤 회전시켜 독특한 볼거리를 만들었다. 폴 스미스 리버풀 비엔날레 운영감독은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한 후 범죄율이 40% 감소한 지역도 있다”면서 “예술가의 창조성과 아이디어가 도시를 되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현대 도시에서는 손이 아니라 머리와 가슴에서 돈이 만들어진다”는 말로 문화와 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직도 진행 중인 유럽문화수도 프로젝트

리버풀의 꾸준한 문화 투자는 2008년 유럽연합의 유럽문화수도 프로젝트를 통해 그 결실을 맺었다. 리버풀 출신의 세계적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의 공연부터 폴 매카트니의 콘서트, 길거리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한해 동안 7,000개의 크고 작은 행사가 열렸고, 1,500만 명의 사람들이 이를 즐겼다. 리버풀시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8억 파운드(약 1조5,00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또 2004년 가보고 싶은 영국 도시 12위(여행잡지 ‘콘드나스트트래블러’ 조사)에 불과했던 리버풀은 2008년 이후 런던과 에든버러에 이은 3위의 도시로 점프했다.

유럽문화수도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끈 가장 큰 요인은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였다. 배우들이 학교로 찾아가 음주, 총기사고 등 각종 사회적 문제를 주제로 학생들과 함께 연극을 만드는 ‘It’s not OK’ 등 커뮤니티 프로그램들이 효과를 거둔 것이다. 유럽문화수도의 해를 앞두고 5년에 걸쳐 진행된 각종 문화적 커뮤니티 프로그램에 리버풀 인구의 3분의 1이 참여했다. 유럽문화수도의 해는 지나갔지만, 리버풀 사람들은 여전히 리버풀이 유럽문화수도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리버풀의 도시 풍경은 하루하루 달라지고 있다. 부둣가에는 초현대식 외관을 자랑하는 리버풀 박물관이 지어지고 있고, 호텔과 쇼핑몰들도 속속 들어서는 중이다. 스타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가 새롭게 오픈한 레스토랑은 젊은 이들과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리버풀은 이제 과거 속에 멈춰있는 도시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살아 움직이는 흥미진진한 도시가 되었다.

리버풀=글ㆍ사진 김지원기자 eddie@hk.co.kr

■ 지역근대산업유산 예술창작벨트화 사업

국내에서도 과거의 산업유산이 지닌 역사성을 활용하기 위한 노력들이 시작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 중인 '지역근대산업유산 예술창작벨트화' 사업이 대표적이다. 기능이 다한 창고와 공장 등의 외형을 유지하면서 지역 특색에 맞는 예술 공간으로 만들어 문화, 관광의 거점으로 삼겠다는 의도다.

시도별로 신청을 받아 현장 심사를 거친 결과, 2008년 말 전북 군산 내항 일원, 전남 신안 태평염전, 경기 포천 폐채석장, 대구 연초제조창, 충남 아산 장항선 폐철도 등 5곳이 최종 선정됐다. 2009년 1년간 준비 조사와 연구 용역을 거쳐 현재 실시설계가 진행 중이며, 10월 께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해 내년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총 예산은 400억 원 정도로, 국비와 지방비가 절반씩 투입된다.

군산의 경우 조선은행, 나가사키18은행, 대한통운, 미즈상사 등 일제강점기 때의 건물을 근대사 테마 공간으로 바꾸고, 신안 태평염전에는 소금창고 리모델링 등을 통해 소금을 소재로 한 문화체험공간이 조성된다. 다른 지역에도 복합문화공간, 극장, 창작스튜디오 등이 들어선다. 자연형, 역사형, 문화형 등 각각의 특성을 최대한 반영하면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 사업의 자문을 맡고 있는 홍의택 경원대 산업디자인과 교수는 "재개발이 능사가 아니라 재생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만으로도 우리 사회가 많이 성숙한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지역의 유산을 활용한 사업은 한 번의 실패가 지역에 치명타가 될 수 있기에 절대 서두르지 말고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 교수는 "당장의 경제적 이익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수 있는데, 끊임없이 만나고 설득해서 반드시 사회적 합의를 얻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인터뷰/ 클레어 맥콜건 리버풀시 문화국장

“최근 5년간 도시의 외모가 완전히 바뀌었죠. 리버풀의 문화 인프라도 더욱 단단해졌구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자신감이 엄청나게 커졌다는 점입니다.”

클레어 맥콜건 리버풀시 문화국장은 2008년 유럽문화수도 프로젝트가 리버풀에 가져온 변화 가운데 사람들의 달라진 인식을 첫 손에 꼽았다.

그는 “30년 전의 리버풀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하는 도시였다”고 말했다. “한 때 세계무역을 주름잡던 도시였는데, 시대가 바뀌면서 모든 역할이 사라져버린 거죠. 잃어버린 도시의 정체성을 되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

리버풀의 유럽문화수도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끈 공로로 영국 여왕으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맥콜건 국장은 “새로운 창조의 기회는 늘 역사 속에서 나온다”며 “다른 지역에서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리버풀 만의 특징을 담아낸 스토리텔링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비틀스, 항구 도시 등 리버풀이 지닌 이야깃거리들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유럽문화수도는 케이크 위에 설탕 가루를 뿌리는 정도의 역할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번의 행사가 리버풀을 바꿔놓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1981년 폭동 이후 정부와 주민 사이에 리버풀 재생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고, 리버풀시는 그를 토대로 역사문화유산을 활용한 도시 재생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세웠다. 또한 문화도시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고 알리기 위해 시와 지역 예술기관이 협력해 꾸준히 투자를 해왔기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현재 맥콜건 국장은 리버풀을 음악의 도시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새롭게 등재시키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리버풀 존 레논 공항 이용객은 10년 전보다 10배 이상 늘어났고, 2007년 다시 문을 연 크루즈 터미널을 통해 수만 명의 사람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대중음악을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의 숫자도 급증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려면 과거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리버풀=김지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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