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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유령은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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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유령은 어디에나 있다

입력
2010.07.28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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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를 보았다. 로버트 해리스의 베스트셀러에 거장 로만 폴란스키의 입김이 들어가 있는 영화. 원작을 읽고 나서 영화가 어떤 모습일까 상상을 많이 했던 영화였다. 속 주인공은 끝까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냥 ‘나’로 등장하면서, 연예인이나 정치가 같은 거물들의 자서전을 대필해서 거기서 얻는 수익으로 살아 간다. 그런데 이번에 그가 맡은 거물은 바로 영국의 전직 수상인 ‘애덤 랭’. 그의 회고록을 재구성해 주는 대가로 ‘나’는 최근 천만 달러짜리 계약의 일부를 얻었다.

전형적인 1인칭 시점인 는 일단 속도감 있는 정치적 스릴러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거물의 그림자이자 거인의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버린 ‘나’는 그 목소리만으로 독자와 소통하는 정말 유령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러나 유령인 그가 주인공이 되어 파헤치는 영국 정치세계의 이면은 놀랍도록 현실과 닮아 있다. 특히 영국 최고의 수상마저도 미국의 정치적 입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책의 결론 안에는, 이라크전 당시 ‘부시의 푸들’이라 불렸던 영국의 수상 토니 블레어에 관한 날카로운 비판의 날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궁금해진 것이 있었다. 폴란드 출신의 노장, 로만 폴란스키가 굳이 를 자신의 만년 작품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일단 미국이란 나라와 영국이란 강대국에 대한 폴란스키의 비판적 시각이 도드라진다. 영국은 늘 비가 오는 불량 도시처럼 우울하게 느껴지고, 미국은 황량하고 속을 알 수 없는, 짐승의 내장처럼 허허롭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의도적으로 단 한 장면에서도 맑은 날씨를 부여하지 않는다. 감독이 흩뿌려 놓은 황량하고 쓸쓸한 미국 동부의 음습한 기운을 느끼다 보면, 어느덧 미국은 어떤 것도 배태하지 못하는 불임의 땅이 되어 간다.

결국 유령은 사람이 되는 순간 호된 대가를 치른다. 아버지의 법 그 자체인 영국 수상의 실체를 누설한 ‘나’ 역시 자살로 위장된 전임 유령작가처럼 쓸쓸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소설의 마지막도 역시 비슷하다. ‘사람들이 이 글을 읽게 된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슬퍼해야 할까. 물론 기뻐해야 한다. 마침내 내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지 않은가? 슬프다면 그건 이미 내가 죽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라고 끝을 맺고 있다.

그렇다면, 유령은 누구인가? 유령 작가는 왜 이름을 받지 못했는가. 어쩌면 진실을 발설하지 못하는 세상. 정치가들조차 더 큰 조직의 빅 브라더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야 말로 모두들 유령이며, 주인공인 ‘나’ 는 아닐까.

그러므로 유령 작가는 죽었으되, 유령은 죽지 않는다. 벤자민 플랭클린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은 25살에 죽었는데 75살에 가서야 장례를 치른다.” 돌이켜 보면 내 안에서부터, 유령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최근 상징적으로나마 유령의 역할을 떨치고 일어난 김미화씨에게 따뜻한 지지를 보낸다. 공영 방송국의 임원들 안에 블랙리스트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가 일개의 개그우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 거대 조직에 어떤 의구심을 제기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녀를 만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미화씨, 당신은 적어도 유령의 역할을 거부했어요. 미화된 삶을 사는 미화의 역할을 거부했어요.”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그녀에게 파이팅을 외쳐본다.

심영섭 영화평론가ㆍ대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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