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를 대표하는 간판 삼성전자는 국내 증시에서도 역시 대장주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28일 현재 123조원으로, 국내 증시 전체 시가총액의 11%를 넘게 차지한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시총 1위, 대장주 자리에 등극한 건 불과 10년 전인 2000년 이후의 일이다. 1990년대엔 공기업 한국전력이 시총 1위를 독주하다시피 했다. 그렇다면 향후 5년, 10년 뒤는?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국내 경제 및 산업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 1990년대 이후 시총 '톱10' 변화를 통해 국내 산업 및 기업의 지형 변화를 짚어보고 향후 구도를 예측해 봤다.
90년대 초반 '대장'은 공기업·은행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하기 전인 90년대 초반. 당시 우리 경제의 간판은 공기업의 차지였다. 사실 삼성전자도 당시만해도 시총 10위권에 간신히 드는 수준이었다. 80년대말 국민주 열풍을 일으키며 상장된 한전과 포항제철이 시총 1,2위. 그러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당시 그룹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한 93년부터 포항제철과 시총 2위를 다투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의 시총은 90년엔 지금(123조원)의 100분의1 수준인 1조3,000억원에 불과했으나, 경제위기를 거칠 때마다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10조원대를 돌파했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뚫고 나온 작년에는 100조원대에 들어섰다.
90년대 초반 공기업과 함께 시총 상위를 지배한 건 은행들이었다. 91~93년 연속 시총 10위안에 한일 제일 조흥 상업 서울신탁 신한 등 6개 시중은행이 포진했을 정도. 하지만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은행주 위상은 급추락했다. 구조조정을 거치며 상업ㆍ한일은행은 우리금융에, 조흥은행은 신한지주에, 서울신탁은행은 하나금융의 품에 안겼고, 제일은행은 미 뉴브리지캐피탈을 거쳐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에 인수됐다. 1999년 부도를 맞은 대우그룹도 계열사 가운데 대우와 대우중공업을 시총 10위권에 올리며 삼성 SK 현대 LG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며 사라졌다.
글로벌위기에 통신 지고 자동차 뜨고
2000년대 초반 시총 상위권을 휩쓸던 통신업종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주도주 경쟁에서 밀려난 불운의 주인공. 한국통신(현 KT)이 1999년 시총 1위를 기록한 것을 비롯해, SK텔레콤과 KT 등 통신주는 2000년을 전후로 시총 2,3위를 차지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외환위기 직후 정보통신(IT) 붐과 더불어 휴대폰 등 통신서비스시장이 급팽창한 것. 하지만 지금은 시총 10위권 밖에서 맴도는 상태다. 2000년엔 시가총액도 20조원을 넘어 삼성전자와 맞먹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SK텔레콤 13조4,000억원, KT 11조원으로 위축됐다.
현재 시총 1, 2위는 삼성전자와 포스코. 하지만 코스피가 2,000 고지를 밟았던 2007년 형성된 이 구도 역시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와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자동차주가 치고 올라서는 기세가 심상치 않기 때문. 2008년 시총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던 현대차가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미국 등 주요 시장서 공격적 마케팅으로 매출이 급신장, 이젠 시총 3위를 굳혔다. 현대차는 포스코와의 시총 격차를 2008년말 2조6,000억원에서 이젠 1조2,000억원으로 좁히며 내심 2위 자리까지 넘보고 있다. 현대모비스(2008년말 25위→현재 10위)와 기아차(2008년말 61위→2009년말 29위→현재 17위)도 순위가 급등했다.
앞으로 우리 경제를 이끌 간판기업은
대신 대우 삼성 신한 한국투자 등 주요 5개 증권사 투자전략팀에 앞으로 5년뒤 시총 상위 10위에 있을 기업들에 대해 설문을 한 결과, 공통적으로 삼성전자 현대차 LG화학 현대모비스 한국전력 포스코 등을 꼽았다. 단 금융업종의 경우 인수합병(M&A)을 통한 성장효과로 KB금융이나 신한지주가 10위권에 남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지금보다 위상은 약해질 것으로 예상됐다. 대신증권은 지금 같은 성장추세라면 삼성전자가 계속 1위를 수성하고, 현대차가 포스코를 제치고 2위로, LG화학이 4위로 부상할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현재 시총 상위 기업들은 이미 확고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기존에 주력해온 사업을 토대로 새로운 성장동력도 확보하고 있어 지속적으로 시장 지배력을 확대해나갈, 막강한 기업들"이라며 "앞으로 시총 순위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년간 시총 상위권에 극심한 지각변동을 겪어왔지만, 간판주자의 체력이 달려 자주 교체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이제는 우리 경제가 안정적인 궤도에 진입했다는 얘기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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