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의 한국 외교관 추방 사건은 스파이 혐의를 둘러싼 한국과 리비아 양국 간의 입장 차이에서 비롯됐다.
발단은 지난 6월 초 리비아 보안당국의 스파이 혐의 조사에서 시작됐다. 리비아 보안당국은 주리비아 한국대사관에 파견된 국가정보원 직원의 정보 수집 활동이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와 그의 아들이 운영하는 조직과 관련된 것이라고 판단하고, 해당 직원을 전격 구금해 조사에 착수했다. 리비아에선 국가원수 주변 조직은 일종의 ‘성역’으로 알려져 있다.
현지 언론들은 ‘이 직원이 카다피 원수의 국제원조기구 조사와 아들이 운영하는 조직에 대한 첩보활동을 한 혐의를 포착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언론들은 이 첩보 활동이 한국 정부 외에도 다른 나라를 위한 것이었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여기서 ‘다른 나라’는 미국 등 한국의 동맹국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우리 정부는 스파이 혐의에 대해 즉각 “아니다, 오해하고 있다”고 해명했으나 리비아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리비아 보안당국은 해당 직원에 대해 같은 달 15일 ‘비우호적 인물’로 통보하고, 72시간 이내 출국해야 하는 관례에 따라 18일 한국으로 추방했다.
이어 같은 달 23일에는 주한 리비아경제협력대표부 직원 3명을 모두 본국으로 불러들였다. 비자발급 등 영사업무가 중단된 것은 이때부터다.
정부는 지난 6일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을 대통령특사 자격으로 리비아에 파견했다. 이 의원은 13일까지 현지에 머물며 바그다니 마흐무디 리비아 총리와 세 차례 만나 오해를 풀기 위한 양국 정보 당국간 협의를 하자고만 합의한 뒤 돌아왔다. 그러나 최고 결정권자인 무아마르 카다피 원수와의 면담은 성사되지 못했다.
이에 국정원 실장급 임원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이 지난 20일 현지로 가서 리비아 정보 당국과 1차 협의를 마치고 리비아 측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리비아에서 활동하던 선교사 구모씨가 지난달 15일 리비아 관계당국에 구속된 데 이어 구씨의 활동을 돕던 한국인 농장주 전모씨가 지난 17일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외교관 추방 사건과의 연관성이 주목 받고 있다.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국정원 파견 직원의 정보 활동은 방위산업 협력과 관련된 통상적 활동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리비아 보안당국이 자국의 국가원수인 카다피를 겨냥한 첩보활동으로 오해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민군합동조사단이 천안함을 격침시킨 어뢰의 설계도를 제3국에서 얻었다고 설명한 것과 연관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우리 정보당국이 리비아에서 북한의 어뢰 목록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다가 리비아 당국과 충돌했을 것이라는 의혹인 셈이다.
또 문제가 되는 것은 리비아와 북한의 불법 무기 거래 혐의를 포착한 것에 따른 정보 활동이다. 리비아 정부도 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인근 중동국가인 이란에 제재를 가하는 상황에서 북한과 불법 무기 거래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리비아에 대해 제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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