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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원의 자녀 교육보감] <18> 믿음과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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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원의 자녀 교육보감] <18> 믿음과 거래

입력
2010.07.27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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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아이 공부시키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 학부모 치고 자녀의 공부 문제로 고전하지 않는 부모는 거의 없다. 하지만 '힘들다'는 현상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성찰이 부족하다.

다양한 설명과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자녀 교육이 힘든 근본 원인 중 하나는 '믿음 부족'때문이라고 꼽고 싶다.

사랑한 만큼, 믿어준 만큼 아이들은 꼭 그대로 자란다. 예외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에 있느냐고, 모든 부모는 자녀를 믿지 않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진정 그럴까.

많은 상담을 통해 학부모들의 속내를 보게 되었다. 자녀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말하는 학부모들의 속내는 실상 '거래'에 가까웠다. 열심히 공부하면 모범생이라는 칭호로 보상을 해주고, 그렇지 못하면 문제 학생이라고 낙인찍는 세상의 거래방식을 충실히 답습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제안하는 이런 방식의 거래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보다는 사회의 요구 그대로, 특히 성적을 가지고 아이들과 거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과 믿음이라는 말로 포장한 채.

부모들은 무심코 "학원비로 쓴 돈이 얼만데 성적이 이 모양이냐"는 말을 내뱉는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마치 채권자와 채무자처럼 변해버린다. 또 "이번 시험에서 몇 점 이상이면 선물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식과 거래관계를 시작한 것이다. 이런 말들이 반복되면 자녀들도 계산을 하게 된다. 자녀들은 공부를 잘하면 부모의 신임을 얻을 것이고, 성적이 떨어지면 부모의 불신을 사게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누군가가 자신을 믿지 못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과연 어떤 느낌이 들까? 특히 공부 못하는 학생에게 성적이라는 약점을 들추며 지속적으로 책임 추궁을 하며 강한 불신을 드러낸다면 말이다. 도저히 외면하지도 피할 수도 없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지속적으로 불신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면 심리적으로 입게 되는 악영향은 상상 이상이라는 점을 부모들은 깨달아야 한다.

현재는 이전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공부를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환경이기는 하다. 하지만 공부에 열중하는 마음을 갖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끊임없이 비교를 당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히면서 결국에는 소수의 성공을 위해 다수는 들러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 공부에 매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청소년의 눈과 귀를 자극하는 유혹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공부를 열심히 잘해서 자부심과 자신감도 갖고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떳떳하고 싶지 않은 아이는 없다. 그렇지만 학생으로 살아가는 동안 희망적인 성적을 얻어 부모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키면서 계속 부모와의 거래에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정반대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결국 부모와의 거래에 실패한 대다수는 불신의 대상자로 전락하여 심리적으로 의욕을 갖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그렇기에 거래가 아닌 믿음이, 그것도 너도 잘하면 나도 믿어줄게 라는 식의 조건달린 믿음이 아니라 네가 잘하든 못하든 모두 믿어주는 무조건 식의 믿음이 정말 필요하다.

주변의 차가운 시선과 불신어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공부에 여전히 의욕을 보이는 아이 뒤에는 반드시 무조건적인 믿음을 잃지 않는 부모가 있다.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는 부진한 성적에 대해서도 믿음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잘하기 때문에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거래에 가깝다. 오히려 문제가 많기 때문에 믿음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단언컨대 믿음은 자녀에 대한 가장 확실한 투자다. 부모의 믿음만큼 강하게 공부의욕을 충전시키는 처방은 아직 없다.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승패가 점점 조기에 판가름 나는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믿음을 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번 낙오하면 영원히 낙오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는 상황에서 거래를 해서라도 자녀를 성공대열에 합류시키고 싶은 욕망을 나무라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말 아이를 위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과감하게 자녀와의 거래를 중단해야 한다.

최근 자녀에 대한 사랑과 믿음은 뒷전으로 밀어둔 채 성적을 가지고 거래하는 부모들이 크게 늘고 있다. 거래를 넘어 매수를 한다는 말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까지 악화된 경우도 많다. 거래는 처음에는 약발이 먹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녀가 조금 나이를 먹게 되면 더는 부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면서 부작용만 생기게 된다.

부모의 제안을 간섭으로 받아들이면서 도리어 원하는 거래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공부하지 않거나 부모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조건을 내걸고 역으로 거래를 제안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부모와 자녀가 갈등하는 이런 상황에서 승자와 패자는 없다. 모두가 피해자일 뿐이다.

더는 세상과 합세하여 아이들에게 거래를 제안하지 말자. 오직 무조건적인 사랑과 믿음을 주자. 그 길만이 자녀의 공부의욕을 북돋우고 살리는 최선의 길이다.

잘하기 때문에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많기 때문에 믿음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비상교육 공부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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