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경기도 성남시 구시가지 재개발 사업을 중단하고 전국 400여 곳의 사업 상당수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성남시의 돌연한 모라토리엄(지불유예) 선언을 계기로 부실한 공룡 몸집을 구조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판교특별회계 적자를 둘러싼 갈등이 가뜩이나 울고 싶던 LH 공사의 뺨을 때려준 격이다. 지금과 같은 방만한 재무구조로는 존속이 위태롭다는 점에서 사업 재조정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공공부문의 신뢰성을 훼손하지 않고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치밀하게 설계돼야 한다.
민간영역까지 침범하며 경쟁적으로 몸집을 늘리던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를 통합해 지난해 말 출범한 LH 공사는 자산이 130조원을 넘지만 올 7월 현재부채도 120조원에 근접하는 ‘문제아’다. 전국 사업장이 택지ㆍ신도시ㆍ국민임대지구 248곳, 도시재생지구 69곳, 세종시ㆍ혁신도시ㆍ산업물류지구 49곳, 보금자리주택지구 43곳 등 414곳으로 사업규모는 모두 420조원에 달한다. 이런 악성구조를 뜯어고치기 위해 우여곡절 끝에 LH가 탄생했으나 실적은 미미하고 되레 부채가 10조원 가량 증가했다.
LH가 이런 속사정을 공개하며 수익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사업이 초기단계인 재개발ㆍ재건축ㆍ도시개발 등 120여 곳의 사업을 연기 혹은 중단하겠다고 밝힌 것은 바람직하다. 시간을 끌수록 해당지역 주민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큰 피해가 예상되는 게 사실이다. 당초 56조원으로 추정한 올해 사업비를 43조원으로, 다시 35조원으로 줄였으나 재원조달은 여전히 불투명한 채 하루 이자만 100억 원에 이른다.
그러나 아무리 구조조정이 급하더라도 공기업을 믿고 몇 년씩 재산권 제약과 생활 불편을 감수해온 주민의 사정을 내팽개칠 일은 아니다. 부동산시장 침체와 수익성 악화 때문에 사업을 중단하는 것이 주민을 위한 길이라고 강변하지만, 이런 상황에 소홀히 대비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이제라도 구조조정 명분과 주민의 이익을 아우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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